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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이 여행자의 성지, 묵호

채지형(여행 작가)

KTX 묵호역에 내리면 여행은 이미 시작된다. 역에서 바다까지 걸어서 단 5분. 파도 소리를 향해 천천히 걷다 보면 골목과 가게, 카페와 책방이 이어지며 어느새 여행자가 된다. 차도 계획도 필요 없다. 그래서 요즘 묵호는 ‘뚜벅이 여행자의 성지’라 불린다.

[그림 1] 묵호역

강원도 묵호가 변하고 있다. 한때는 ‘술과 항구’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던 어른들의 여행지였다. 하지만 지금의 묵호는 다르다. 상큼하고 발랄한 분위기를 지닌 젊은 여행자의 동네로 서서히 바뀌고 있다. KTX와 ITX 덕분에 차가 없어도, 시간이 많지 않아도, 지갑이 넉넉하지 않아도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지가 되었다. 여행자가 늘어나면서 골목 풍경도 달라졌다. 앙증맞은 소품 가게와 빵 냄새가 새어 나오는 베이커리, 조용히 차를 마실 수 있는 티룸과 작은 공연이 열리는 스튜디오까지. 작은 공간들이 하나둘 생겨나며 묵호는 점점 더 매력적인 여행지로 변하고 있다.

아기자기한 묵호역 동네 한 바퀴

[그림 2] 묘한

묵호역에서 바다 방향으로 걷다 보면 ‘묘한’이라는 작은 소품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고양이를 테마로 한 가게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기자기한 소품이 빼곡하다. 고양이를 키우는 주인장의 취향이 곳곳에 묻어 있다. 애묘가라면 그냥 지나치기 힘든 공간이다.

[그림 3] 잔잔하게_1

[그림 4] 잔잔하게_2

묘한 건너편에는 작은 독립책방 잔잔하게가 있다. ‘책과 함께 당신의 동해 여행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책방이다. 문을 열면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바닷가에서 읽을 책을 고르고 주인장에게 동네 이야기를 물어보자. 묵호를 사랑하는 책방지기는 동네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다. 여행 코스나 숨은 가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발한삼거리 앞 골목으로 들어가면 티룸 도야하우스가 나타난다. 소품샵과 티룸이 함께 있는 공간이다. 테이블 간격이 넉넉하고 음악도 낮게 흐른다. 책을 읽거나 생각을 정리하기 좋다. 은은한 차향이 시간을 늦춘다. 여행 중 잠시 호흡을 고르고 싶다면 이곳이 제격이다.

[그림 5] 카라멜스테이션_1

[그림 6] 카라멜스테이션_2

[그림 7] 카라멜스테이션_3

커피가 생각난다면 카라멜스테이션으로 가보자. ‘호텔 카라멜’ 1층에 자리한 카페다. 거대한 카라멜을 닮은 갈색 벽돌 외관이 눈에 띈다. 내부는 생각보다 넓고 지하 공간까지 이어져 있다. 묵호를 찾은 젊은 여행자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공간이다.

바다로 달려가는 풍경, 어달삼거리

[그림 8] 어달삼거리

묵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는 어달삼거리다. 삼거리에서 내려다보이는 길은 마치 바다로 곧장 달려가는 듯한 풍경을 만든다. 일본 가마쿠라의 ‘슬램덩크 건널목’이 떠오를 만큼 인상적인 장면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여행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모여든다.

[그림 9] 묵호항활어회판매센터

[그림 10] 어달항북방등표

삼거리 앞 바다에는 물고기 모양 구조물이 서 있다. 이름은 어달항북방등표. 등표는 바다에 설치된 항로표지로, 배가 안전하게 길을 찾도록 돕는 장치다. 높이 약 13m의 물고기 형상 구조물로, 어미 물고기 등에 작은 새끼 물고기가 붙어 있다. 이곳은 과거 어선이 자주 난파되던 위험한 바다였다. 수면 아래 숨은바위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항해의 안전을 지키는 동시에 여행자들에게도 특별한 풍경을 선물한다.

근처에는 작은 어달해변이 있다. 길이 약 300m, 폭 20~30m 정도의 아담한 해변이다. 넓지 않아 더 친밀한 분위기를 준다. 물가에 서 있는 갈매기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잔잔한 파도와 어우러진다.

바다를 따라 걷는 길, 해파랑길 33코스

[그림 11] 해파랑길 33~34 코스 고불개해변

바다가 아름다운 묵호에서 빠뜨리면 안 될 것이 해파랑길이다.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750km를 잇는 동해안 걷기 여행길로, 모두 50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해파랑'이라는 이름에는 동해의 상징인 '해', 바다색을 담은 '파', 함께 걷는다는 뜻의 '랑'이 어우러져 있다.

[그림 12] 해파랑길 33~34 코스 몽돌해변

이 중 33코스는 추암해변에서 시작해 전천강과 동해역, 한섬과 하평해변을 거쳐 묵호역 입구까지 약 13.6km를 이어간다. 하이라이트는 한섬해변에서 묵호역에 이르는 구간이다. 파도를 벗 삼아 걷다 보면 울창한 숲과 몽돌해변, 기기묘묘한 바위가 쉼 없이 나타난다.

[그림 13] 논골담길 벽화

[그림 14] 논골담길 전경

가세해변에서 하평해변으로 향하는 길에는 근사한 전망대가 있다. 그 자리에 서면 드넓은 바다와 묵호등대, 논골담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림 15] 도째비골 근처 도깨비 조형물

밤이 되면 더 깊어지는 묵호

[그림 16] 해랑전망대_야간

묵호의 매력은 밤에도 이어진다. 별빛처럼 반짝이는 논골담길, 바다 위를 가르는 고깃배 불빛, 형형색색 조명이 빛나는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그리고 조용한 밤 산책이 어울리는 한섬까지. 묵호의 반전 매력을 발견하고 싶다면 저녁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해 질 무렵 덕장마을로 향해 보자. 파스텔빛 하늘 아래 논골담길의 지붕들이 보이고 노란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 저녁을 준비하는 집, 책을 읽는 방, 막 잡아 온 물고기를 손질하는 부엌. 평범한 불빛들이 모여 묵호의 밤을 따뜻하게 밝힌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는 밤이 되면 또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도깨비불처럼 흔들리는 조명이 곳곳에서 반짝이고, 기둥 위 ‘슈퍼트리’는 색을 바꾸며 환상적인 야경을 만든다. 낮보다 더 신비로운 묵호의 밤이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