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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전 세계를 강타한 COVID-19 팬데믹 블랙스완(Black swan)은 우리 사회의 일상과 인식에 있어 위험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함을 보여주었다. 마스크 착용의 일상화, 비대면 중심의 사회적 교류 등은 사회 전반적으로 위험 인지(risk awareness)가 증가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특히, COVID-19 이전부터 디지털 환경 변화 속도가 증가해 왔으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그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음을 경험하였다. 즉, 비대면 업무 환경이 확대되고, COVID-19에 대응한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급격히 이루어졌는데, 문제는 이로 인해 사이버 범죄, 해킹 등의 파생 위험이 팬데믹 이전에 비해 크게 증가하였다. 또한, 2016년 발효된 파리협정과 함께 국제사회의 논제로서 자리잡기 시작한 기후변화 위험은 최근 몇 년간 지구촌 곳곳에서 극단적 이상기후 현상이 관찰되면서 정치사회적 핵심 어젠다가 되었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Ulrich Beck)은 1986년 발간한 자신의 저서 “위험사회(Risikogesellschaft)”를 통해 위험이 인간사회의 중심 현상으로 자리잡는 사회를 논하였다. 과학과 기술 발전, 급속한 경제성장, 환경에 관한 경각심 부족 등과 함께 형성된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에서 위험은 인간 사회 패러다임의 중심으로 자리잡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사회는 이렇게 울리히 벡이 정의한 위험사회로 이미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현 사회에서 위험의 가장 중요한 특성을 꼽자면 단연 역학적 성질(dynamics)이다. 사회 변화가 빠를수록 내재된 소위 위험의 환경(risk landscape)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복잡해진다. 현대 사회에서의 위험 환경의 변화에서 관찰되는 특징은 위험에 노출된 대상 간 상호 연결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사이버 공간상 위험 환경이 이러한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산업의 급속한 디지털 전환과 함께 네트워크 환경 내 상호 연결된 디지털 기기 또는 사물 인터넷 수는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며, 국경을 초월한 상호 연결성은 잠재적 사이버 위험에 대한 노출 수준을 평가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기후변화 위험 또한 유사한 특성을 내재하고 있다. 탄소배출이라는 인간 활동의 결과가 기후환경의 변화로 이어지고, 다양한 자연재해의 빈도와 심도의 변동성이 높아지면서 인간 사회로의 영향은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기후변화 위험의 현실화 및 가속화로 가뭄에 의한 피해가 지속되면서 건조한 날씨로 인한 화재 위험 또한 그 위협이 과거에 비해 증가하고 있음을 다수의 통계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국내의 경우 <표 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지난 10년간 연간 평균 화재 건수는 근소하게 감소하고 있으나, 전체 재산피해액 및 건당 재산피해액의 경우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산불 또한 <그림 1>에서 알 수 있듯이 건수 및 피해 면적, 연간 발생 일수 모두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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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사회 전반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됨에 따라 화재 위험이 단순히 발생 지역에서의 인명 및 재산 피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상 장애를 유발하여 사회 전반의 대규모 비용을 발생시키는 사례가 최근 종종 관찰되고 있다. 예를 들면, 2018년 발생한 KT 서울 아현지사 화재 사고의 경우, 일대 통신망이 마비되어 KT 통신망을 이용한 카드 결제가 불가능해지면서 음식점, 카페, 편의점 등의 소상공인 영업손실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한 물적 피해만 약 500억에 가까운 것으로 추산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작년 10월 카카오 데이터 센터 화재로 인한 전국적인 데이터망 장애 사고가 있었으며,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단일 디지털 환경 속 사이버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디지털 전환, 사이버 공간의 확대,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의 증가 등 우리의 일상에서 새로운 위험의 범위가 확대되고,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 있다. 앞서 정의했듯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위험사회라는 전제하에 우리의 삶은 결국 위험관리의 연속이 될 것이다. 이미 알려진 위험(예를 들면, 일상의 질병, 사고 등)을 포함하여 불확실성이 높은 잘 알려지지 않은 신종 위험(팬데믹, 극단적 자연재해 등)까지 관리할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관리체계의 확립은 필연적이다.
이론적으로 위험관리 체계는 1) 위험관리 목표의 설정, 2) 위험요인의 탐지, 3) 위험의 정성적/정량적 평가, 4) 위험관리 최적 기제 선택 및 체계 확립, 5) 전체 프로세스 모니터링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단계는 위험관리의 주체에 따라 목표가 상이할 수 있으며, 마지막 단계는 관리체계를 구축하였음에도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사건(또는 손실 사건)을 통해 미비점을 도출하여 보완해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체계의 중추적 과정인 위험 탐지부터 최적 기제 선택까지의 단계이다. 높은 기술적 역량 및 자본력을 갖춘 기업일수록 이 과정에서 요구하는 정확한 위험 예측과 선도적인 위험관리 방법을 구축할 수 있으나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수익창출 활동이 아니기에 관심도가 떨어진다.
이러한 위험 환경 하에서 효과적인 위험관리를 여러 산업 군에 배양하기 위해서는 위험관리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중 실현 가능한 방안은 위험관리 전문기관의 육성이다. 예를 들어, 기후환경을 정확히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인력과 정보보안 및 컴퓨터 과학에 관한 이해가 높은 인력을 보유한 전문기관을 통해 고도화된 분석의 결과와 효과적인 맞춤형 솔루션을 도출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FM Global, Verisk, RMS와 같은 위험관리(또는 위험평가) 전문기관이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장에서 역할을 해오고 있으며, 허리케인, 지진, 사이버 해킹과 같은 위험을 평가하는 모형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함으로써 제반 산업의 위험관리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한국화재보험협회가 특수건물 대상의 화재 위험 평가 등 화재 위험에 전문화된 위험관리 기관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평가 대상 위험 범위가 제한적이기에 현 시점에서 위험관리 전문기관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고민하고, 변화하는 위험 환경에서 기관의 역할 확대와 시장 구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본고에서는 그 고민의 시발점으로서 한국화재보험협회의 전반적인 업무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정량적 평가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고, 미래 발전 방향성에 관한 단편적 고찰을 개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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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사회경제적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화재보험협회의 주요 업무 분야를 크게 5가지(안전점검, 컨설팅, 계몽·홍보, 시험인증 및 연구개발, 화재안전조사)로 구분하였다. 먼저, 안전점검은 소방분야의 각종 국가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 기술진이 특수건물에 대한 화재 위험요인을 진단하고 대처방안을 제안하는 화재 예방 활동으로서, 특수건물의 방재시설 및 화재 위험 정보를 수집하여 보험사들에게 보험요율 할인정보 등 보험 계약 시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업무이다. 이는 화재 위험도지수 및 최대예상손해를 산정하거나 손실예방 및 피해경감 대책을 수립하는데 도움이 된다.
컨설팅은 건축물이나 기업활동에 내재된 각종 화재 위험요인을 찾아내고 합리적인 종합 대책을 제시함으로써 재난 및 재해에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업무를 의미한다. 협회는 화재위험진단, 방재시스템 신뢰성평가, 인명안전컨설팅 등 사업장에 적합한 맞춤형 방재컨설팅을 제공하며, 전통시장 및 양곡창고에 대한 화재안전점검 컨설팅도 수행하고 있다. 계몽·홍보 활동의 경우 교육 및 홍보 업무와 방재기술 실무교육 등 안전의식 제고를 목적으로 협회에서 수행하는 공익적 제반활동을 의미한다. 불조심 어린이마당, 재난 안전교육, 보도자료, SNS 활동, 방재와 보험 웹진 등 다양한 대중 홍보 활동을 포괄한다. 네 번째로 시험인증 및 연구개발은 국내·외의 각종 규격에 따른 시험업무 및 안전 관련 제품의 신뢰성을 확인해주는 인증업무, 방재시험연구원에서 수행하는 연구업무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화재안전조사는 연구원이 전문적으로 축적된 화재 기술을 바탕으로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방안으로 화재 원인을 규명함으로써 보험범죄와 화재 위험을 예방하는 활동이다.
<표 2>는 위에서 기술한 5가지 분야 업무의 사회경제적 가치평가 방향을 요약하여 보여준다. 안전점검 분야의 경우 해당 업무의 유효성(즉, 안전점검 효과)을 통계적으로 검정하여 화재로 인한 재산 피해 경감 및 사회비용(인명피해) 경감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평가하였다. 또한, 협회가 사원사에게 제공하는 언더라이팅(UW) 정보 플랫폼의 가치를 외부 설문조사 전문업체를 통해 제공받은 사원사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평가하였다. 1)
컨설팅 분야는 협회의 방재 컨설팅 이력과 특수건물 화재 사고 데이터를 결합하여 업무를 통한 화재 확률 감소 효과를 추정하였으며, 전통시장의 안전평가를 통해 경감된 화재 빈도 효과를 평가하였다. 2)
11 본 연구의 사회경제적 가치평가 절차는 실증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그림 2>에서 도식화된 분석 절차와 같이 데이터 사이언스 프로세스(Data science process)의 이론적 체계를 답습하여 각 업무 분야 평가 방향 설정부터 모델 구축, 결과 해석까지 수행하였다. 본 연구에서 협회 내·외부적으로 수집한 데이터는 총 26가지이며, 이 중 22가지 데이터를 개별 또는 결합하여 분석하였다. 구체적으로, 평가 대상 업무별 최적 분석 모델을 선택하고, 각 업무 효과를 반영할 변수의 통계적 유의성을 판단하여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절차를 수행하였다. 중요한 점은 절차의 각 단계에서 실증 데이터가 설명하지 못하는 논리적 공백, 비합리성, 비과학성을 제거하고자 기존 연구의 결과를 참조하거나 합리적 가정을 수립하여 적용하였다.
11 본고에서는 분량 제한상 모든 평가 대상 업무의 분석 절차를 보여주기 어렵기 때문에 안전점검 업무의 재산피해 경감액 평가 절차를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해당 업무 평가는 협회 내부 데이터상 미점검 특수건물을 비교집단으로 설정하여 안전점검에 대한 독립적인 효과를 통계적으로 검정하였다. <그림 3> 에서 볼 수 있듯이 데이터 전처리 과정을 통해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 세트를 구성한 후 안전점검의 유효성 판단을 위한 분석을 진행하였다. 점검의 유효성은 시각화 분석을 통해<그림 4>의 좌측 그래프와 같이 점검의 유효기간의 변동성 통제 시점으로 도출하였으며, 이를 변수로 변환하여 <그림 4>의 우측과 같이 다양한 통제변수들 4) 과 함께 모형을 구축하여 통계적 유의성을 검정하였다. 이를 통해 협회의 안전점검 및 미점검 특수건물 간 화재확률/화재피해규모에 있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존재함을 확인하였다. 확인된 점검 유효변수의 통계적 효과를 점검대상 특수건물 수, 화재 시 평균피해액 등과 결합하여 최종적으로 경제적 경감가치를 산출하는 과정을 수행하였다.
11타 업무 분야도 앞서 기술한 안전점검의 재산 피해 경감액 가치 산출 절차와 유사하게 평가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협회 업무의 총 가치는 연간 최소 1,134.95억원으로 추정되었다(표 3 참조). 전체 가치 중 안전점검 업무의 가치가 약 85%(약 950억원)를 차지하며, 그 외 전통시장 안전 평가, 시험인증 업무의 사회경제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남을 확인하였다. 요약하면 현재 화재보험협회의 연간 사용예산을 고려했을 때 화재 위험을 평가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협회의 제반 업무는 사회경제적으로 충분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1담보 위험의 범위가 넓은 일반손해보험 시장의 최근 성장세는 타 손해보험시장 및 생명보험시장을 상회한다. 이는 서론에서 제기한 현 사회의 다양한 위험환경의 변화와 함께 사회 전반의 위험관리 인식이 제고되면서 일반손해보험시장, 특히 기업보험시장의 성장이 기대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재해재난위험(Cat risk)의 가능성이 여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에서 수집 데이터가 다양화되고, 그 규모가 압도적으로 커진 빅데이터 시대에 맞게 위험평가의 고도화 및 보다 정교화된 위험관리 발전전략이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1한국화재보험협회는 화재 위험에 맞춰진 현 위험평가/관리 역량을 넘어서서 데이터 수집, 관리, 분석 기술의 고도화를 추구함으로써 그 역량의 범위를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일반손해보험에서 담보하는 다양한 위험 요인을 분석하기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하여 효과적인 데이터 공급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표 4 참조). 데이터 수집 및 가공, 관리의 노하우가 축적되면 중장기적으로 협회 자체 위험평가 모형 개발 및 재해재난 위험(Cat risk)에 대응하기 위한 위험관리 컨설팅 역량을 발전시키는 것을 제안한다. 이는 점차 증가하는 대형 위험사건에 개인, 사회, 시장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지원해줌으로써 선진사회에 걸맞는 위험관리 체계를 구축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11 위험관리는 기업 입장에서 궁극적으로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역할을 하고, 국가 차원에서 경제 상황 관리 및 국민 복지를 증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반도체와 같은 핵심 기술 기반 산업의 육성 및 지원도 물론 중요하지만, 위험관리 전문기관과 위험평가 시장 육성을 통한 짜임새 있는 산업 발전 체계를 갖추는 것도 산업,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이미 지난 50년간 축적해온 화재 위험평가 및 관리 노하우를 갖춘 한국화재보험협회가 일반보험 위험 영역 전반에서 그 역량을 발전시켜 빠르게 변화하는 다양한 위험환경에 제반 산업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기관으로 성장해 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