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변지석 행정안전부 재난보험과장
도시화에 따른 인구집중, 산업의 고도화, 기후변화 등에 따라 재난·사고 유형은 더욱 복잡·다양해지며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다. 발생 가능성과 피해 규모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20년부터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COVID-19) 대유행으로 전세계가 신음하고 있다. 감염 등 1차 피해뿐만 아니라 경제 위축 등 2차 피해가 눈덩이처럼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의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의 생활 안정을 위한 재난대책비와 국민지원금 지급 등 코로나-19로 위축된 경제 회복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지원금 등의 지급은 일시적이며, 본래의 목적은 외면되고 대중의 인기만을 쫓는 대중영합주의(populism)라는 부정적 인식도 존재한다. 국민의 지원 요구 수준은 계속 높아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국가의 재정부담은 가중된다. 지속적이며 국가의 재정부담도 최소화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정부 의존도를 줄이고 스스로 재난·사고에 대비할 수 있도록 민간협업을 통한 재난보험의 확대가 더욱 중요하다.
정부가 주관하는 재난보험은 풍수해 등 불가항력적인 재난 발생 시 피해를 입은 농어민 등의 자력 복구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부에서 보험료를 일부 지원하는 정책보험
과 시설의 소유·점유·관리자가 해당 시설로 인해 발생한 제3자의 피해를 보상할 수 있도록 보험 가입을 강제하는 의무보험으로 나눌 수 있다.그동안 추진해온 정부의 재난보험을 살펴보면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에 대비하는 보험 또는 공제(이하 “보험”)가 필요할 때마다 개별적으로 도입ㆍ운영됨에 따라 각각의 법령에 따른 보험별 보상수준 등이 다르고, 그 보상수준이 피해 회복을 위한 적정 수준에 미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20년 6월 9일 재난안전의무보험
총괄관리를 위한 재난안전법이 개정되어 2021년 6월 10일부터 시행되었다. 이번 기회를 빌려 재난안전의무보험의 도입 배경과 법령 개정을 통한 재난안전의무보험 총괄관리 추진 방향 등을 소개하고자 한다.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재난·사고 발생 시 재난·사고를 유발한 자가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사법제도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정부가 보상에 관여하는 경우가 드물며, 재난·사고 유발자가 손해배상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거의 평생 경제활동에 제약을 받게 된다.
재난안전법도 제66조 제6항에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복구비 등의 지원 원인이 되는 사회재난에 대하여 그 원인을 제공한 자가 따로 있는 경우에는 그 원인 제공자에게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청구할 수 있다.’라는 규정을 2017년 1월 17일 신설하였다. 재난·사고 유발자가 배상을 책임지는 원칙주의를 채택하였다. 이제는 자신이 발생시킨 불의의 재난·사고로 지게 될 손해배상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미리 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보험 가입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 등이 많아 다중이 이용하고 재난에 취약한 시설에 대해서는 의무보험으로 보험 가입을 강제하고 있다. 대신 일반 보험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재난안전관련 의무보험은 1973년에 ‘화재로 인한 재해보상과 보험가입에 관한 법률’에 따른 “화재보험 신체손해배상특약”이다. 대연각호텔 화재 사고 이후 제3자에 대한 피해 보상 등을 둘러싸고 발생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특수건물
소유자의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함과 동시에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과정에서 도입되었다. 이후 서해 훼리호 침몰로는 “유도선사업자배상책임보험”,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로는 “가스사고 배상책임보험”이 도입되는 등 사회적 이슈 및 대규모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하면 각 기관별로 재난안전의무보험을 개별적으로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동안 정부의 재난안전 관련 의무보험은 필요할 때마다 개별적으로 도입ㆍ운영됨에 따라 각각의 법령에 따른 보상수준 등이 다르고, 그 보상수준이 적정 수준에 미치지 못한 경우가 많았으며, 재난안전 관련 보험가입 현황 등에 대한 자료 또는 정보의 관리도 체계화 되어 있지 못하는 등의 문제점이 있었다.
이에 따라 재난안전 관련 보험제도를 총괄관리하기 위하여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개정하였다. 재난안전 관련 의무보험을 주관하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해당 보험에 관한 법령을 제정ㆍ개정하는 경우 재난안전법에서 제시하는 적정 수준의 보상 한도를 해당 법령에 반영하도록 함으로써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 인한 생명ㆍ신체의 손해에 대한 적정 수준의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재난안전 관련 보험에 대해서는 보험사업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 체결의 거부나 계약을 해제ㆍ해지하는 것을 제한하도록 하는 등 법률에서 의무가입하도록 하는 보험이 갖추어야 하는 기준을 정하였다. 한편, 행정안전부장관은 재난안전 관련 보험ㆍ공제에 관한 자료 또는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ㆍ관리할 수 있도록 재난안전의무보험 종합정보시스템을 구축ㆍ운영하도록 하는 등 현행 제도의 운영상 나타난 일부 미비점을 개선ㆍ보완토록 하였다.
현재 재난안전의무보험은 18개 중앙행정기관에서 45개 법률에 따라 43개 의무보험이 운영되고 있다. 재난안전의무보험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재난·사고 발생 이후 각 중앙행정기관에서 개별 법령에 근거하여 도입·운영함에 따라 보상한도 등 관리·운영 현황이 상이하다.
“재난배상책임보험”, “다중이용업소 화재배상책임보험” 등은 사망의 경우 피해자 1명당 1억 5천만원, “산후조리원배상책임보험”, “수렵보험” 등은 1억원, “가스사고배상책임보험”, “승강기사고배상책임보험” 등은 8천만원으로 보상한도를 규정하고 있다. 각각 다른 시설에서 유사한 재난·사고를 당하더라도 개별 법령에 따라 다른 보상을 받게 되므로 형평성 및 실질적 피해 보상이 부족할 수 있다. 더욱이 일부 보험은 법령상 보상한도를 정하고 있지 않으며, 의무보험임에도 미가입자에 대한 과태료 부과 등 제재 규정을 마련하고 있지 않아 가입 의무화의 실효성이 낮은 경우도 있다. 가입자 현황 파악 등을 위한 전산 정보시스템도 재난배상책임보험, 자동차손해배상책임보험 등 18개 보험만 구축된 상태로 체계적인 가입자 관리 등도 어려운 상태이다.
개정된 재난안전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재난안전의무보험을 ‘재난이나 각종 사고로 사람의 생명·재산 등에 피해가 발생한 경우 그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보험으로 법률에 따라 가입을 강제하는 보험·공제’로 정의(제3조제10의2 신설)하고 재난안전의무보험 관련 법령이 갖추어야 할 기준(제76조의2 신설)을 규정하였다. 또한 행정안전부 장관은 개별 법령에 따른 관리·운용 현황 등이 기준에 적합한지 등을 분석·평가하고 이에 미치지 못할 경우 관련 법령의 개정 및 관리·운용 개선 권고 등(제76조의3 신설)을 할 수 있다. 또한 관련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재난안전의무보험 종합정보시스템도 구축·운영(제76조의4 신설)할 수 있는 근거 규정도 마련하였다.
그리고 적정 보상한도 및 보험의 관리·운용 등에 공통 적용될 수 있는 업무 기준 마련, 재난안전의무보험 관리·운용 현황에 대한 분석·평가·개선 권고 등에 관한 절차 및 방법, 종합정보시스템의 구축·운영 관련 정보의 공동이용 등에 필요한 사항을 하위법령에 위임하였다.
재난안전법 시행령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개별 법령에 따른 재난안전 의무보험의 적정한 보상 한도를 규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타 법령조항뿐만 아니라 법원의 사망보상금 지급 판례 등을 검토하였다. 사망의 경우 피해자 1명당 1억 5천만원 이상의 범위에서 피해자에게 발생한 손해액, 다만 그 손해액이 3천만원 미만인 경우에는 3천만원 이상으로 제시하였다.
또한 보험금의 지급 방법, 미가입자에 대한 시설별 특성을 반영한 적정한 과태료 산정·부과 등 제재 방안, 다양한 가입독려 방안 등 재난안전의무보험의 관리·운용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는 업무기준과 재난안전의무보험의 종류는 “재난안전의무보험의 관리·운용 등에 관한 업무기준” 고시에 수록하였다.
두 번째로 업무기준 등에 따라 각 중앙행정기관에서 관계 법령을 개정하였는지 여부 등을 분석·평가하고 행정안전부의 개정·개선권고 및 이에 따른 이행결과 제출 등의 세부절차와 관련된 내용을 시행령에 규정하였다. 개정·개선권고의 이행령 확보를 위해 개정·개선권고 및 이행결과 내용을 재난안전법 제10조에 따라 행정안전부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각 중앙행정기관의 차관 또는 차관급으로 구성되는 안전정책조정위원회에 보고할 수 있도록 근거도 마련하였다.
그동안 하위법령 개정안을 마련하여 금융위원회, 재난안전의무보험 주관기관, 민간전문가 등과 폭넓은 사전 의견 조회 및 협의·조정 등을 실시하였다. 협의·조정 결과를 반영하여 개정안을 마련하였고 행정예고, 법제처 협의 등을 거쳐 2021년 6월 개정을 완료하였다. 하반기부터는 각 재난안전의무보험의 제도개선을 위한 개정·개선 권고를 준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그간 각 재난안전의무보험별로 상이했던 관리·운용 현황 등이 표준화되고 통합적으로 규율될 것으로 기대한다.
재난안전의무보험 종합정보시스템 구축은 2021년 정보화 전략계획(ISP) 등을 수립하였으며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보급·활용될 전망이다. 이를 통해 각 재난안전의무보험의 가입 여부 등 현황관리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미가입자에 대한 과태료 부과 등 관리가 강화되어 의무보험의 실효성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재난·사고 발생 시 의무보험 가입정보, 예상 보험금 지급 규모 등 조기 파악을 통해 신속한 재난 수습 지원 등 대국민 서비스 질도 제고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가입 대상시설 수 등이 적은 소규모 의무보험은 개별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보다 범부처 차원의 재난안전의무보험 종합정보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 유리하기에 범정부적 측면에서 시스템 구축·운영 예산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재난안전의무보험의 방대한 데이터는 체계적인 운영·관리하기 위해 보험료율 산출기관에 그 업무를 위탁할 예정이다.
중앙행정기관별로 재난안전의무보험을 도입·운영함에 따라 재난·사고 취약시설임에도 의무보험 가입대상에서 누락되어 온 사각지대가 존재했다. 이러한 사각지대를 발굴하여 재난배상책임보험의 가입대상으로 정함으로써 보다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였다. 또 재난안전법 개정을 통해 각 재난안전의무보험의 표준화를 유도하고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되었다. 이제 재난안전의무보험은 제도의 공고화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모든 재난·사고를 정부 주도의 재난보험으로 해결할 수는 없지만, 지속적이며 국가의 재정부담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지향해야 할 부분임은 확실하다. 그간 재난안전의무보험이 도입되어 온 것과 같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 아닌 미리미리 보다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보험 관련기관, 각 보험사 및 공제사, 민간전문가 등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안전사회 구현을 위해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부탁드리며 그간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