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영규 화재보험협회 위험관리지원센터 과장, 공학박사
코로나19 사태를 모범적으로 관리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위상이 한층 격상되었고, ‘우리도 선진국’이라는 국민적 자부심이 고조되었으며, K-팝에 이에 K-방역이라는 한류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특히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 경증 환자를 위한 생활치료센터 아이디어는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날 만큼 기막혔다는 생각이 든다. 방재 분야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번엔 K-방재라는 한류 모형이 전 세계를 강타하는 태풍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태풍이라고 하면, 강한 바람, 많은 비, 낮은 중심기압을 떠올릴 것이다. 태풍의 낮은 중심기압은 해수면 상승을 야기하며, 여기에 태풍의 강한 바람은 높은 파고를 생성하여 해안가 지역의 해일 피해 가능성을 고조시킨다. 바람의 경우, 동일한 위치더라도 지면의 마찰 영향을 덜 받는 높은 곳일수록 더 강한 바람이 불게 된다. 이로 인해 강풍 피해는 지붕재, 옥상에 설치된 교회 첨탑과 같은 구축물, 건물 벽면에 설치된 간판 등이 강풍에 취약하다. 많은 비는 침수를 야기할 수 있으며, 산사태(토석류 포함)와 댐·저수지·하천의 제방 붕괴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처럼 태풍이 몰고 오는 바람과 비는 다양한 유형의 피해를 발생시킨다. 본 기고에서는 태풍으로 인한 여러 유형의 피해 중 산사태와 저수지·댐 재난의 K-방역이라 불리길 기대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하고자 한다.
전원생활을 위해서, 또는 도심의 비싼 토지가로 인해 산림 인접 지역을 주거나 사업의 입지로 선택하곤 한다. 산림 인접 지역이 주는 이점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산사태 위험과 같은 지리적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2019년 태풍 미탁 때, 부산·경남·경북·강원 지역 여러 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특히 [그림 1]에 보이는 부산 사하구 산사태는 4명의 사망자를 야기하며 사회적 논쟁거리가 되었다.
[그림 2]는 부산 사하구 산사태 발생 지역 인근의 산사태 위험지도를 보여준다. 위험등급은 1등급에서 5등급으로 표시되며, 1등급은 산사태 발생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것을 알려준다. 산사태 위험지도는 산림 지역에서만 표현이 되는데, 부산 사하구 산사태 인근 지역의 산림은 3~5등급으로 위험이 크지 않다고 추정된 지역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행 산사태 관리는 [그림 3]에서 보이는 것과 같다. 전체 산림지역 중 1차로 산사태 발생가능성이 큰 산림지역(산사태 위험지도 1등급 또는 2등급 지역, 산사태우려지역)으로 축소한 후, 2차로 산사태 발생 시 피해규모가 큰 산림지역(산사태취약지역)으로 축소하여 관리하게 된다. 지정된 산사태취약지역은 자원을 투입하여 정비하고 안전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산사태취약지역이 해제된다. 현행 패러다임은 산사태 자체의 사고발생 건수를 줄이는 데 초점을 둔, 발생 예방 중심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다. 이 패러다임의 가장 큰 약점으로 부산 사하구 구평동 산사태지역(3~5등급 지역)은 산사태취약지역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부산 사하구 구평동 산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산사태는 3~5 위험등급에서도 일어난다. 우리는 이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산사태가 어느 곳에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발생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즉, 1차적으로 산사태 시, 피해규모가 큰 지역을 산사태우려지역으로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했다면 4명의 사망자와 약 100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부산 사하구 구평동 산사태지역은 산사태우려지역으로 선정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단순한 순서 바꿈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사소한 아이디어가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는 발생 자체의 예방이 아닌 인명과 재산을 중시하겠다는 피해 예방 중심의 패러다임을 의미한다.
새롭게 제안하는 피해 예방 중심의 패러다임을 실무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산림 인근 전역에서의 피해규모 추정이 가능해야 한다. 수많은 지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사태의 피해규모를 빠르게 산출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최근 GIS 기술의 발달로 다중 지점의 신속한 피해규모 산출이 가능해지고 있다. 이런 기술을 활용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인명을 살릴 수 있을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2020년 5월 19일 미국 미시간주의 이든빌댐(Edenville dam)과 샌포드댐(Sanford dam)이 붕괴되는 사고가 있었다. [그림 4]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든빌댐은 샌포드댐 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이든빌댐이 먼저 붕괴되었으며, 이로 인해 증가된 유입량으로 하류의 샌포드댐 또한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댐 또는 저수지가 붕괴되는 경우 하류 지역에 극심한 홍수피해를 유발하기 때문에 태풍 시즌 동안 저수지·댐으로 인한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국내의 저수지·댐 시설물 관리는 [그림 5]에 보이는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한다. 안전점검을 통해서 각 시설물은 A(우수), B(양호), C(보통), D(미흡), E(불량)의 안전등급을 받게 된다. 붕괴 발생가능성이 큰 D등급 또는 E등급을 받은 저수지·댐 중 심의를 통하여 재해위험 저수지·댐이 지정·고시된다. 지정된 재해위험 저수지·댐은 자원을 투입하여 정비하고 안전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재해위험 저수지·댐은 해제된다.
하지만 저수지·댐 사고는 D등급과 E등급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2018년에 붕괴한 전남 보성군 모원저수지의 안전등급은 B등급이었으며, 2014년에 붕괴한 부산 기장군 내덕저수지의 안전등급은 C등급, 2014년에 붕괴한 경북 영천시 괴연저수지의 안전등급은 B등급이었다(이영규, 2018).
저수지·댐 안전등급과 관계없이 붕괴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현행 저수지·댐 재난관리 패러다임 변화를 생각해 볼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재난관리는 발생가능성과 피해규모 관점에서 관리된다. 지금의 재난관리 패러다임에서는 1차적으로 붕괴 발생가능성이 높은 저수지·댐으로 범위를 줄이고 이후 심의 과정에서 피해규모를 감안하여 재해위험 저수지·댐을 지정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안전등급이 A등급, B등급 또는 C등급인 저수지·댐 은 저수지·댐 하류에 엄청난 인명과 재산이 노출되어 있다 하더라도 재해위험 저수지·댐으로 관리될 가능성이 전무해진다.
저수지·댐 붕괴로 인한 인명과 재산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산사태 관리에서 제시한 것과 같이 1차적으로 인명과 재산 손실이 우려되는 저수지·댐으로 범위를 축소한 후 발생가능성을 고려하여 재해위험 저수지·댐을 지정·고시하는 피해 예방 중심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런 패러다임을 적용한다면 하류 지역에 많은 인명과 재산이 노출되어 있는 저수지·댐의 경우 안전등급이 B등급 또는 A등급이라 할지라도 재해위험 저수지·댐으로 지정되어 특별관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피해 예방 중심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전수 저수지·댐의 피해규모를 추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도 저렴한 비용과 빠른 시간내에 가능해야 한다. 기고자는 피해 예방 중심 패러다임 이행을 위하여 전수 저수지·댐의 피해규모 추정이 가능한 GIS 기반의 기술을 개발하였다. 경북 영천시에는 826개소의 저수지가 있으며, 개발 기술로 전수 저수지의 붕괴시 피해규모를 추정하는 데 약 10시간이 소요되었다. 이와 같은 기술을 적용한다면 피해 예방 중심 패러다임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린아이가 넘어지면, 부모는 다가가 아이를 일으키며, ‘괜찮니?’라고 묻는다. 이때 괜찮으면 넘어진 사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상처를 입었다면 부모로서 자책하며 넘어지는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것에 대해 또는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할 것이다.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정된 자원 내에서 사고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고로 인한 인명과 재산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우리의 재난관리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피해 예방 중심 패러다임이 지금보다 성공적인 재난관리를 이끌 수 있다면 K-방재 또한 한류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