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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설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네팔 포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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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슬렁어슬렁, 느긋하게 히말라야 &
눈부신 설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네팔 포카라

글 · 사진 채지형 작가

몸도 마음도 지쳤을 때, 떠오르는 풍광이 있다. 하얀 눈으로 덮인 히말라야에 바람이 부는 장면이다. 지구상에 히말라야만큼 매혹적인 여행지가 또 있을까.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자연과 하나가 되는 기분이 든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는 히말라야 사람들의 삶의 태도는 지나온 길을 돌아보게 만든다. 나를 초심으로 돌려놓고 싶을 때,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싶을 때, 무작정 누군가에 의지하고 싶을 때 히말라야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유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를 온몸으로 누리는 첫 번째 방법은 트레킹이다. 천천히 걸으며 설산 깊은 속살을 향해 한 걸음씩 옮긴다. 짧게는 당일 트레킹부터 길게는 수십 일에 걸친 트레킹까지 트레킹 코스는 수십여 가지다. 여러 코스 중 히말라야의 장엄한 일출을 볼 수 있는 3박 4일 푼힐 코스와 일주일 동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다녀오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코스를 많이 찾는다. ‘풍요의 여신’이라는 뜻의 안나푸르나는 인류가 최초로 오른 8,000m급 봉우리로, 풍광이 빼어나고 상대적으로 고도가 낮아 누구나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히말라야를 생각하면 트레킹을 먼저 떠올리지만, 꼭 트레킹을 해야 히말라야를 만나는 건 아니다.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Pokhara)에 가면, 산에 오르지 않아도 히말라야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포카라는 네팔 최고의 휴양도시이자 안나푸르나의 관문 도시로, 네팔 현지인도 평생에 꼭 한번 가보고 싶어 하는 넘버원 여행지다.

포카라에서 히말라야를 만나는 방법은 그저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거대한 병풍처럼 히말라야의 하얀 설산이 도시를 포근하게 안고 있다. 히말라야 여신의 보호를 받고 있는 기분까지 든다. 특별한 히말라야를 경험하고 싶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면 된다. 호숫가 위로 다울라기리부터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로 이어지는 장엄한 설산이 매혹적인 반영을 그려낸다. 바라보기만 해도 평화가 찾아들고 방전된 에너지가 충전을 시작한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펼쳐진 히말라야. 산을 좋아하든 아니든, 포카라와 금세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평화로운 호수의 도시, 포카라

제2의 도시라고 하지만 포카라는 자그마하다. 여행자를 위한 숙소와 식당도 옹기종기 모여 있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닐 수 있다. 포카라가 편안한 이미지를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호수 때문이다. 포카라는 ‘호수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주변에 베그나스, 마이디, 디팡 등 여러 호수가 있다. 포카라라는 지명도 호수를 뜻하는 네팔어 ‘포카리’에서 나왔다.

여러 호수 중에서 최고는 페와호수(Phewa Tal)다. 해발 784m 지점에 자리한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로, 포카라의 대표 아이콘이다. 히말라야 설산에서 녹아내린 물이 호수를 만들었다. 눈앞에 있어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초현실적인 풍광을 보여준다. 새파란 하늘과 푸른 호수 사이에 데칼코마니처럼 그려진 히말라야는 감탄사를 끝없이 내뱉게 만든다. 포카라를 그리워하는 여행자가 있다면, 십중팔구 페와호수 때문이다.

호수를 좀 더 가까이 경험하고 싶다면, 뱃놀이도 할 수 있다. 호숫가에 알록달록한 나무배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노를 젓다 보면, 어느덧 신선이라도 된 기분이 든다.

네팔에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포함, 14개의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중 8개가 몰려있다. 포카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봉우리인 다울라기리(8,169m)와 안나푸르나(8,091m), 마나슬루(8,156m)도 8개 안에 속해 있다. 8,000m급 고봉에 속하진 않지만, 포카라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봉우리가 마차푸차레다. 높이는 6,998m로, 물고기 꼬리처럼 생겼다. 네팔어로 마차는 물고기, 푸차레는 꼬리를 뜻한다. 물고기 꼬리라는 의미 때문에, 피쉬테일(fishtail)이라고 불린다. 마차푸차레는 다른 산과 달리 능선이 가파르고 가운데가 뾰족해, 다른 봉우리와 확실하게 구분된다. 네팔 현지인들이 특히 신성시하는 산으로, 아직 정상을 밟은 이가 없는 미답의 산이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등반도 금지되어 있다. 네팔 사람들의 마차푸차레에 대한 애정은 거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피쉬테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숙소와 식당, 기념품 가게가 여럿이다. 물고기 꼬리 모양을 그려 넣은 티셔츠를 비롯해 기념품 소재로도 사랑받고 있다.

겨울에도 온화한 날씨

포카라를 한없이 사랑스럽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날씨다. ‘히말라야의 겨울’을 생각하면 세상을 얼음 왕국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추울 것 같지만, 포카라는 다르다. 겨울에도 낮에는 티셔츠만 입고 다녀도 될 정도다. 여름에는 25~35도로 그다지 덥지 않고, 겨울에도 크게 춥지 않다. 겨울에도 수은주가 0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 흔하지 않다. 한겨울 포카라의 레이크사이드에는 햇살 받이를 하며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여행자를 쉽게 볼 수 있다.

포카라 주변에는 반나절 정도 돌아볼 만한 코스도 여럿이다. 해발 1,100m에 자리해 히말라야와 포카라 풍광을 한 품에 안을 수 있는 ‘샨티 스투파’와 해발 1,600m에 자리한 마을로, 가벼운 산행으로 히말라야 설경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랑곳(Sarangkot)이 인기다. 사랑곳은 새벽녘 해가 뜰 때, 낮과는 전혀 다른 기운을 느낄 수 있어, 이른 새벽부터 사람들로 북적인다.

여행작가 채지형 travelguru@naver.com
< 여행정보 >

항공
인천국제공항에서 포카라까지 가는 직항편은 없다.
카트만두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대한항공에서 1주일에 4회 카트만두 직항을 운항하고 있으며 7시간 40분 걸린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는 국내선 비행기로 30분 더 가야 한다.
한 가지 팁. 포카라행 비행기를 탈 때는 오른쪽에 앉는 게 좋다. 설산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차
한국과 3시간 15분 차이다. 우리나라 오전 9시는 네팔 새벽 5시 45분.


비자
공항에서 도착 비자를 받을 수 있고 사진 1장이 필요하다.
관광비자로 15일과 30일, 90일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