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2023년 7월 9일~27일 호우 재난 동안 그림 1의 왼쪽 그림과 같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재난 에피소드가 있었다. 이 재난에서 최악의 에피소드는 단연코 청주 흥덕구 오송읍 소재의 궁평2지하차도 침수(그림 1 우측 그림 참조)일 것이다. 재난 에피소드의 전개 양상에서 적절한 대응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것을 궁평2지하차도 침수 에피소드를 통해서 우리는 경험한 바 있다. 재난 에피소드의 전개 단계별 적절한 대응 조치를 할 수 있는 역량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배양할 수 있다. 재난 에피소드의 전개 양상에 대한 DB는 대응 역량 강화와 대응매뉴얼 작성에 필요한 재료라 할 수 있다. 본 기고에서는 이런 맥락 속에서 재난 에피소드의 전개 양상을 DB로 구축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도로절개사면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전개 양상의 DB 구축을 보여주고자 한다.
빈 바둑에서 상대방을 이기려면 수읽기가 매우 중요하다. 수읽기는 ‘일정한 국면에 대한 상대방 수의 의미를 해석하고, 일어날 변화를 머릿속으로 추리하여 최선의 수를 선택하는 과정1)’이다. 저자는 수읽기 개념과 유사하게 대응 역량을 정의하고자 한다. ‘대응 역량이란 현 상황을 해석하고, 일어날 전개 양상을 머릿속으로 추리하여 최선의 조치를 선택하는 능력’을 말한다. 일어날 전개 양상을 머릿속으로 추리하는 능력을 학습하기 위해서는 과거 재난 에피소드의 전개 양상을 통해서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부터는 훈련에 필요한 재난 에피소드의 전개 양상 DB 구축 방법을 설명한다.
빈 재난 에피소드의 전개 양상을 가장 잘 전달하는 방법은 그림 2와 같이 시간과 공간 축에서 핵심이 되는 장면을 나열하여 전개 양상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림 2에서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화살표는 전개 양상의 흐름 순서를 나타낸다. 그림 2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장면이며, 장면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그림 3은 장면을 도식화하기 위해 고안한 장면 삼각형을 보여준다. 장면 삼각형은 영화 촬영 시 사용하는 슬레이트를 본떠서 고안했다. 장면 삼각형 밑변에는 목적물(exposure)이 위치하며 그림 3의 예시에서는 ‘도로’라는 목적물이 표현되어 있다. 삼각형 빗변에는 사건(event)이 위치하며, 예시에서는 ‘(도로가) 낙석으로 막힘’이라는 사건이 표현되어 있다. 삼각형 수직변에는 효과(effect)가 위치하며, 예시에서는 ‘(도로가 낙석으로 막혀) 통행 중단’ 효과를 표현하고 있다. 장면 삼각형 내부에는 세 개의 공간이 존재하며, 상단에는 장면 번호(scene #) 정보, 중단에는 위태(hazard) 정보, 하단에는 대응조치(response) 정보가 들어간다. 그림 3의 장면 삼각형이 의미하는 바는 ‘장면 번호 3: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도로가 낙석으로 막혀 통행이 중단되자 도로관리국에서 낙석을 제거 중’이다.
빈 그림 4는 2002년 태풍 루사 재난 에피소드 중 하나로, 강릉시 오봉댐 저수지 둘레 도로절개사면 에피소드를 시공간 재난 전개 양상으로 도식화한 것이다. 처음 시작은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도로절개사면에서 낙석이 발생하며 소규모의 사면붕괴가 발생했다(장면 #1). 2002년 8월 31일 오전 9시 30분쯤 도로관리국은 통행 재개를 위해 도로를 막고 있는 낙석을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장면 #2). 이곳을 지나던 차들은 차량정체에 갇혀 위험 지역에 다수 차량이 놓여 있었다(장면 #3). 이런 가운데 도로사면절개지에서 토석활동(debris slide)으로 대규모 사면붕괴가 발생했다(장면 #4). 이에 따라 도로 위 일부 차량이 토석에 매몰되면서 탑승자 중 사상자가 발생했다(장면 #5). 일부 차량은 토석에 떠밀려 저수지로 추락하면서 탑승자 중 사상자가 발생했다(장면 #6).
빈 그림 4의 재난 전개 양상을 보면, 낙석으로 인한 소규모 사면붕괴 이후 대규모 추가 사면붕괴로의 전개 양상을 배제한 대응으로 큰 피해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낙석과 같은 소규모 사면붕괴 시 도로 통행을 신속하게 재개한다는 대응 조치보다 위험 지역의 양방향 통행을 차단하고, 위험 지역 인근에 차량이 위치하지 않도록 한 후, 추가 사면붕괴 가능성을 가장 먼저 조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추가 사면붕괴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 후 도로 통행 재개를 위한 작업을 실시하는 대응매뉴얼이 필요하다.
빈 그림 5는 2001년 춘천에서 화천으로 가는 5번 국도 도로절개사면에서의 시공간적 재난 전개 양상을 보여준다. 전개 양상은 5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1년 6월 20일 도로절개사면에서 낙석이 발생하는 사면붕괴 피해가 있어, 낙석방지망을 보수하고 통행을 재개하였다(장면 #1). 열흘 후인 2001년 6월 30일 새벽 3시쯤 도로절개사면에서 낙석이 발생하는 사면붕괴 피해가 재차 일어났다(장면 #2). 이로 인해 차량이 낙석과 충돌하여 차량 탑승자 2명이 사망하는 피해가 발생했지만, 이 번에도 낙석방지망 보수 후 통행을 재개했다(장면 #3). 채 하루가 지나지 않은 2001년 6월 30일 밤에 도로절개사면에서 낙석이 발생하여 3번째 사면붕괴 피해가 발생했다(장면 #4). 그곳을 지나던 차량이 낙석과 충돌하여 차량 앞부분이 파손되는 피해가 발생했고, 그제야 낙석방지벽 공사를 실시했다(장면 #5). 그림 5의 에피소드에서는 낙석방지망으로 감당이 안 되는 데도, 낙석 발생 시 낙석방지망 보수에 그친 것이 가장 큰 패착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차 낙석 사고 후 낙석방지망 보수 대신 낙석방지벽 신설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담당자의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했을 것이다. 수많은 재난 에피소드의 전개 양상을 DB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그림 4와 5와 같은 전개 양상을 그릴 수 있는 도구(시스템 등)가 필요하다. 이 도구를 저자는 재난 시나리오 제작 지원 시스템이라고 호칭하고자 한다. 여기서 시나리오는 일어날 수 있는 전개 양상 사례라 할 수 있다.
빈 재난관리에서 대응 역량을 키운다는 것은 현 상황을 이해하고 일어날 전개 양상을 추리하여 가장 적절한 대응조치를 선택하여 실행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과 같다. 일어날 전개 양상을 추리하는 것은 90%의 경험과 10%의 상상력으로 가능하다고 본다. 이를 달리 말하면 일어날 전개 양상이 과거 전개 양상과 같을 확률이 90%, 그렇지 않을 확률이 10%라는 것이다. 과거 전개 양상을 학습하고 훈련하는 것은 재난 전개 상상력에도 큰 도움이 된다. 과거 전개 양상을 학습하고 훈련하려면 과거 재난의 수많은 에피소드에 대한 전개 양상이 DB로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본 기고자는 2024~2027 기간 동안 과거 재난 에피소드에 대한 전개 양상 DB 구축 연구를 수행한다. 이렇게 구축된 전개 양상 DB는 재난관리자의 역량 강화 프로그램 재료로 또한 대응매뉴얼 작성 재료로 이용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재난 교육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