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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화원인으로서 트래킹 현상 오인에 대한 사례 연구

글 이승훈 · 박주희 · 김호섭 · 유문조 서울특별시경찰청 과학수사과

화재의 원인을 밝힐 때, 현장의 증거들은 화염에 의한 파괴 등의 화재의 특수성 때문에 완벽하게 수집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현장에 남아 있더라도, 대규모 파괴 속에서 전기적 용융흔적과 같은 미시적인 증거를 발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현장에 남아 있는 증거들은 조사관들에게 발견되기 어렵거나, 해석이 간과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왔다.

본 연구의 2021. X. X.에 서울 XX 소재의 금속절삭 작업장에서 발생한 화재의 조사사례를 검토하여 현장에서 수행한 화재원인 가설 전개의 오류 가능성을 검토하고 사례에 적합한 새로운 가설을 탐색하였다. 증거의 발견과 해석이 간과됨으로서 잘못된 화재원인 가설을 도출하였던 화재조사 오류사례를 보고하면서 추후 유사사례 재발방지를 촉구하고자 한다.

1. 서론 및 연구의 목적

화재조사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한다. 화재현장의 증거들은 현장 자체를 제외하면 대부분 미시적이며, 직관적으로 원인을 밝힐 만큼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증거들을 최대한 수집하고, 그것들을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연결 짓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단편적인 현상이나 물적 증거에 과도하게 집중하고, 기타 증거의 발견을 소홀히 하거나 법과학적 해석을 간과하는 경우에는 잘못된 가설을 도출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화재원인 조사를 망치는 경우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서울지방경찰청 관내에서 발생한 화재사건 중 증거 발견의 부족 또는 법과학적 해석을 간과함으로서 발생한 오류사례를 재검토하여 현장에서 내린 잠정적인 가설을 수정하고 보다 합리적인 가설을 도출하였던 검증 과정을 보고하고자 한다.

추후, 본 연구가 화재조사관들의 유사사건 조사에서 도움이 되길 기대하며, 조사관들의 마음가짐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길 기대한다.

2. 사례 및 최초 가설

가. 현장 상황

현장감식을 수행하였던 경찰 과학수사요원의 현장관찰 상황은 다음과 같다.

- 현장은 약 5평 넓이이며 선반 작업을 하는 공장으로, 현장에는 선반 기계들과 공구들이 설치되어 있고, 출동 당시 현장 내부 소화기 분말로 덮여 있는 것이 관찰된다.

- 현장은 대부분 소훼되지 않았으며 우측(입구에서 내부를 들여다보았을 때) 천정 아래에 설치된 분전반과 그 벽면에 그을림 흔적이 관찰된다.

- 피해자는 현장 내 콘센트를 추가하기 위해 전기 기술자가 작업을 위해 분전함 앞으로 갔는데 갑자기 ‘펑’ 소리와 함께 불꽃이 보였고, 동시에 계량기와 그 옆 건물 지붕에서도 펑 소리가 났다는 진술이다. 화상을 입은 전기 작업자는 차단기를 조작 핸들을 OFF 상태로 조작하였으며, 그 후, 작업을 하기 전 ‘펑’ 소리와 함께 불꽃이 발생했다고 진술하였다.

- 작업자가 소지하였던 전동공구의 드라이버 끝부분에서 미시적인 전기적 용융흔적이 관찰되었다.

- 배전반에서 3상 4선식의 메인 차단기의 전원측 4개의 전선 중 3개 전선과 단자 4곳 중 3곳에서 전기적 용융흔적이 관찰되었다.

- 현장 건물 옆 블록, 건물1층 계단 옆 벽면에서 전자식 전력량계가 설치되어 있고, 이 전력량계의 하단에서 탄화흔적이 관찰되며, 전원측 배선은 절단되어 있고, 계량기함 바닥에서 전기적 용융흔적이 관찰되는 용단 전선 2개가 발견되었다.

- 위 전력량계의 전선이 분리된 지점에는 그을음과 열의 흔적이 관찰되며 그 외 다른 곳은 화재가 확산되지 않은 상태이다. 물피 : 차단기 및 전력량계 단자 및 배선 일부 소실
인피 : 전기기술자 좌측 안면 및 좌측 상박부위 2도 화상

나. 현장에서 설정된 화재원인에 대한 가설

위 사건의 화재조사에 참여했던 화재조사관은 차단기의 트래킹 현상에 의한 화재인 것으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었다. 트래킹 현상이 발생하였다고 보는 근거는 발화지점이며 전기적 특이점의 최종 부하측인 3상4선식 차단기 전원측 단자 3개가 서로 용융되어 있었으며, 차단기의 절연체가 탄화되어 있고, 현장은 금속을 절삭 가공하는 곳으로, 작업 중 발생한 도전성 금속분진이 차단기 절연체 위로 내려 앉아 트래킹 현상이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결론을 내렸다.

3. 현장상황과 가설의 재검토

가. 전력량계 배선에 대한 검토

본 사건의 상황을 살펴보면 차단기 전원측 단자가 용융된 것뿐만이 아니라 차단기의 전원측에 해당하는, 전자식 전력량계의 전선 3개도 전기적인 폭발 또는 용단된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차단기의 트래킹 현상뿐만 아니라 동시에 회선 내에 전반적으로 과전류가 발생하였다는 점을 증명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전력량계의 파괴부위가 단자가 아니라 전선 중간 부분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배선의 용단전류를 초과하였다는 점을 증명한다. 과전류는 허용전류 이상의 전류가 흘러 배선이 과열될 수 있는 현상이며 전류의 양이 일정수준 이상에서는 전기적 폭발을 일으키는데, 이 수준의 전류를 용단 전류라고 한다. 전력량계와 전기적 폭발을 일으킨 배선의 근접 사진을 [그림 1]에 제시하였다.

(1) 프리스 실험식에 의한 용단전류

용단전류를 구하는 프리스(W. H. Preece)의 실험식은 용단전류를 다음과 같이 용단계수와 직경의 1.5제곱에 의한 곱으로 정의하고 있다.1)

용단전류를 구하는 프리스(W. H. Preece)의 실험식

여기서 I f 는 용단전류, a는 용단계수, 그리고 D는 전선의 직경(단위 [mm]), 구리의 용단계수는 80이다.

사례의 전력량계에서 전기적 용단을 일으킨 배선의 규격은 단면적이 직경 10mm(허용전류 70A)이므로 프리스 식에 대입(80*10^1.5)하여 산출한 용단전류는 약 2,530A에 이른다.

전력량계 연소부위 및 전력량계 배선의 전기적 용단 상황

나. 차단기 트래킹 현상에 의한 전력량계 과전류 가능성 검토

과전류 현상은 합선, 과전압, 과부하의 3가지 원인에 의해서 발생할 수가 있다2). 트래킹 현상이 비정상적으로 전류가 흐르는 것으로서 과전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지만, 트래킹 현상은 도전로가 형성되어 절연이 파괴된 절연체를 통해서 흐르는 것이므로, 저항체의 간섭이 없이 전류가 흐르는 일반적인 합선과 전류를 비교했을 때에는 현저히 낮다는 점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차단기의 설치 상황과 단자의 모습을 [그림 2]에 제시하였다.

분전반의 차단기와 전원측 단자의 용융 형태

트래킹 현상의 발생 메커니즘을 고려하면, 트래킹 현상은 절연체 위에 수분이나 도전성 먼지 등이 축적되어 미소방전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탄화도전로가 형성되는 것이다3). 그리고 탄화도전로가 형성된 절연체를 통해서 전류가 흐르기 때문에 탄화도전로 형성 후에도 저항이 합선만큼 낮아지지는 않는다. 트래킹 현상이 발생한 절연체의 저항은 10-20Ω 상당인 것으로 알려졌다4). 갑자기, 한 번에 과도한 전류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저항이 감소하고, 전류가 증가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트래킹 현상의 발생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이 사건에서 차단기 전원측에 설치된 전력량계 배선의 전기적 용단이 트래킹에 의해 발생하였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다.

옴의 법칙

여기서 I는 전류, V 는 전압, R은 저항이다.

이 차단기의 절연이 10Ω 이라고 가정하고, 사례의 전압은 3상 전원으로 선간의 전압은 380 V이다. 저항으로 나누어 산출(380/10)하였을 때 이 차단기의 트래킹 전류는 38A이다. 이 값은 전력량계 배선의 용단전류인 약 2,530A에 미치지 못하는 값이다. 따라서 차단기 전원측 단자의 트래킹 현상으로 발생한 과전류에 의해 전력량계의 배선이 전기적으로 용단되었다는 가설은 부정된다.

다. 작업자 상황을 고려한 검토

작업자가 착용하였던 마스크의 열변형

작업자가 착용하였던 마스크를 살펴보면 차단기에서 발생한 열과 도체의 용융 비산물에 의해서 심각하게 열 변형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스크의 사진은 [그림 3]에 제시하였다. 그 외에도 작업자는 얼굴에 2도 화상을 입었다.

작업자는 당시 차단기 단자와 매우 근접한 위치에 서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사건의 잠정적인 가설은 ‘트래킹 현상이 우연의 일치로 작업자가 근접하여 작업을 시작하기 직전에 발생하였다.’는 가설은 관계자들의 진술 외에 증명하기 어려운 우연과 가정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단자와 매우 근접한 상태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는 점은 화재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는 이상, 작업자의 작업과 관련된 화재일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 의혹을 발생시킬 수 있다.

전동공구와 드라이버 팁의 용융흔적

작업자의 전동드라이버의 끝부분을 살펴보면 매우 경미하게 용융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차단기 단자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용융정도는 매우 경미하다고 볼 수 있지만, 용융되었다는 점은 결국 전선 또는 도체의 접촉 사실을 증명한다. 작업자의 접촉 없이 트래킹 현상이 발생하였다면 전동드라이버의 용융은 발생할 수 없다. 해당 전동공구의 용융 및 연소 상황은 [그림 4]에 제시하였다.

4. 가설의 검증

본 사건에서 잠정적으로 내렸던 발화원인은 차단기 전원측 단자의 트래킹 현상에 의해 화재가 발생하였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러나 이 가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검증을 수행하고, 더욱 합리적인 새로운 가설을 도출할 수 있었다.

(1) 동일 회선 내의 동시적인 전기적 문제는 과전류에 의한 것이다.

(2) 차단기의 트래킹 현상에 의한 이상전류는 전력량계 배선의 용단전류에 미치지 못한다.

(3) 따라서 차단기 트래킹 현상에 의한 전력량계의 배선 용단 가능성은 부정된다.

(4) 전동공구의 드라이버의 용융 흔적은 전기적 접촉사실을 증명한다.

(5) 트래킹 현상에 의한 가능성이 부정되며, 전동 공구의 접촉사실 증명으로 보아 본 건 화재는 전동공구에 의한 합선에 의해 발화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화재의 원인은 축적된 도전성 분진에 의한 트래킹 현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금속공구의 전극 간 접촉에 의해서 합선이 발생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가장 합리적 가설이 될 것이다.

5. 결론

잠정적인 가설을 도출한 선행 화재조사관은 자신의 과실을 숨기기 위한 작업자의 거짓진술을 막연히 신뢰하였으며, 작업공구인 드라이버의 용융흔적을 발견하지 못하였거나 법과학적인 해석을 간과하였다. 또한 전력량계 배선의 전기적인 용단에 대하여 적절한 평가를 내리지 않았으며 발화원인 가설의 중요증거로서 활용하지 못하였다.

본 건 화재에서 최종 부하측 전기적 특이점인 차단기의 단자부의 용융흔적과 절연체의 탄화흔적은 매우 중요한 증거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주변에서 부수적으로 나타난 기타 흔적에 대해서 보다 더 관심을 기울이면 더욱 합리적인 가설을 도출하고 정밀한 화재감식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본 연구를 통해 화재조사관들의 마음가짐이 환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후기] 본 연구는 서울특별시경찰청 과학수사과 연구 단체인 [과학수사 현장 스터디 모임]의 연구 활동과 지원에 의해 수행되었습니다. 관계제위께 감사를 전합니다.

참고문헌

1) W. H. Preece, “On the heating effects of electric currents”, Proc. Royal Soc., Vol. 36, pp464-471, 1884
2) 이승훈, “화재조사 이론과 실무 4th Edition”, 동화기술, 2019, p. 165
3) 이승훈, “화재조사 이론과 실무 4th Edition”, 동화기술, 2019, pp. 149-150
4) 이승훈, “화재조사 이론과 실무 4th Edition”, 동화기술, 2019, p.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