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사진 채지형 작가
폐공장이 새롭게 변신, 남녀노소 즐기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옛것이 주는 안도감, 넓은 공간이 주는 편안함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호기심까지, 어슬렁거리기만 해도 상상력이 하나둘 깨어난다. 여기에 레트로 붐까지 더해져, 완주 산속등대와 전주 팔복예술공장을 향한 여행자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산속에 빨간 등대가 우뚝 서 있다. 등대 앞 낡은 외벽은 옛이야기를 던지고 알록달록한 컨테이너박스는 물음표를 던진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이곳은 전북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산속등대다.
산속등대는 방치된 종이공장을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과거 이곳은 제지산업의 중심지로 종이공장이 있었으나, 산업변화와 환경문제로 문을 닫아야 했다. 수년간 작업 끝에 ‘버려진 시간 속, 새로운 문화를 디자인하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고, 완주에 문화예술의 불을 본격적으로 밝히기 시작했다.
산속등대 곳곳에는 공장의 옛 모습이 남아있다. 연기를 내뿜는 굴뚝이, 희망의 빛을 비추는 등대로 변신했다. 길이 33m, 지름 3m의 빨간 등대는 위용을 자랑하며 중심을 지키고 있다. 입구에는 붉은 벽돌의 ‘기억의 파사드’가 있다. 과거 구조물 옆에 새로운 구조물을 세워, 과거와 현재를 한 자리에 놓았다. 기억의 파사드를 지나면 오른쪽에 ‘제1 미술관’이 나타난다. 종이를 생산하던 제지공장 중 한 동으로 천정과 기둥을 그대로 보존했다.
작품을 보고 나오면 슨슨카페로 연결된다. 슨슨카페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압축해 설계한 상징적인 건물이다. 옛날 건축물 안에 새 건축물이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자조. 협동, 닦고 조이고 기름칠’이라고 쓰여 있는 1980년대 표어가 흑백영화처럼 다가온다. 슨슨이라는 이름은 산속등대의 ‘ㅅㅅㄷㄷ’를 조합해 만들었다. 거친 외부와 달리 내부는 아늑하다. 여유로운 공간에 사방 통유리라 마음이 편해진다.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내, 향도 맛도 좋다.
카페에서 나오면 ‘더 맑게 더 푸르게’라는 벽이 기다린다. 레트로한 사진을 담을 수 있는 포토존이다. 뒤로는 폐수처리 시설을 보존해 만든 등대 폰드와 생태정원이 있다.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어, 야외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좋다. 등대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흰수염고래가 있는 고래놀이터가 있다. 바닥은 모래다. 조형물 안에 들어갈 수 있게 제작돼, 고래 안에 들어가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중요한 공간 중 하나가 어뮤즈월드다. 아이들과 청소년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체험공간으로, 라이프스타일·엔터테인먼트·안전&교육·사이언스·아트 등 5개 테마 존이 있다. 유튜브에서 인기 있는 실험을 아이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하고, 프로그램도 정기적으로 바꾼다. 이색적인 공간이 여럿이다. 폐수 처리장이었던 원형 건물을 살린 공연장은 로마의 콜로세움을 닮았다. 자그마한 공연에 안성맞춤이다. 1980년대 토목공사 특징을 엿볼 수 있는 ‘모두의 테이블’, 하늘에서 보면 별 모양인 ‘별빛광장’ 등 다채로운 재미가 어우러져 있다. 구석구석 구경하다 보면 한나절이 금방 흐른다.
전주 북부에 자리한 팔복예술공장도 폐공장을 개조해 만든 전주의 핫플레이스다. 시작은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쏘렉스라는 회사에서 만든 테이프는 아시아 곳곳으로 수출됐다. 호황도 잠시, CD가 등장하면서 환경은 급변했다. 회사는 1991년 문을 닫고 공장은 멈췄다. 버려진 공장에 손길이 닿은 건 25년 후, 문화체육관광부 ‘산업 단지 및 폐산업 시설 문화 재생 사업’에 선정되면서다. 전주시와 전주문화재단은 2016년부터 과거의 기억을 모으고 현재의 아이디어를 더해, 죽은 공간을 살리기 시작했다.
‘2019 아시아 도시 경관상'을 받은 팔복예술공장은 창작 전시공간인 A동과 예술 교육공간인 B동으로 나뉜다. A동 1층에는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하던 회사 ‘쏘렉스’의 역사를 보여주는 물건이 전시돼 있다. 카세트테이프를 비롯해 손으로 작성하던 출근부, 수출할 때 찍었던 스탬프는 과거를 상상하게 한다.
카페 ‘써니’에도 공장의 흔적이 남아있다. 옥상에 버려진 철문은 테이블 상판으로 변신하고, 공장에서 쓰던 작업의자는 조명이 되었다. 입구에는 나팔바지를 입은 인형이 서 있다. 쏘렉스 시절 여성 노동자의 모습으로, 큰 몸에 비해 손이 유난히 작다. 집안 사정이 어려운 소녀들이 일하느라 닳은 손을 상징한다. 외부에는 빨갛고 노란 그늘막이 무채색 벽과 어우러져 묘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전시공간도 있다.
팔복예술공장에서 눈길을 끄는 곳은 A동과 B동을 연결하는 빨간 컨테이너다. 무채색 건물에 생동감을 더한다. 팔복예술공장은 여행자와 현지인도 잇는다. 카페 ‘써니’의 바리스타와 공간을 설명해주는 해설사도 현지인이다. 올 초 문을 연 ‘써니부엌’도 주민이 직접 여행자를 맞는다. 세대도 융합한다. 어린이부터 청소년,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누가 찾아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예술 장르에도 경계가 없다. 연주회도 열리고 퍼포먼스도 펼쳐진다. 앞으로 더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등장할 예정이다. 머물지 않는 예술, 쉬지 않는 새로움. 팔방미인 팔복예술공장에 자꾸 가고 싶은 이유다
- 산속등대 : https://www.sansoklighthouse.co.kr/ 063)245-2456
- 팔복예술공장 : https://www.palbokart.kr/ 063)211-0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