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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동해

글 · 사진 채지형 작가

바다와 산, 이야기 넘치는 감성만점 여행지 동해

때로는 자연이 큰 위로가 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만남이 걱정스러운 요즘, 마음 놓고 자연 에 안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럴 때면 바다가 출렁이는 강원도 동해가 떠오른다.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기 좋은 논골담길, 출렁다리로 매력을 더한 추암해변, 피톤치드 가득한 무릉계곡 등 언택트(비대면) 관광지가 풍성한 동해시. 고즈넉한 분위기도 끌린다. 청정한 자연과 가슴 울리는 낭만을 찾아, 동해시로 떠나보자.

동해시는 아담하다. 인구가 채 10만 명이 안 되고, 면적도 180.20㎢다. 땅 넓은 강원도에서 두 번째로 작다. 그러나 작은 고추가 매운 법. 내로라하는 산과 바다를 옹골지게 품고 있다. 추암부터 망상, 묵호, 어달, 한섬, 대진 등 바다를 볼 수 있는 반짝이는 해변이 오른편을, 두타산과 청옥산을 비롯한 초록 짙은 산이 왼편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좌산 우바다’라고 해야 할까. 산에서 바다까지 가는데 필요한 시간은 단 10분. 산과 바다를 다 품고 있어, 산의 청량함과 바다의 낭만을 모두 누릴 수 있다.

감성 여행의 시작, 논골담길

한가롭게 걷기 좋은 논골담길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논골담길은 묵호항의 역사와 마을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는 길이다. 아기자기한 벽화를 따라 10여 분 오르면, 동해의 시원한 전망이 펼쳐진다. 작은 수고로움으로 황홀한 풍광을 맞아도 되나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논골’이라는 이름은 이곳의 역사를 말해준다. 오징어와 명태가 많이 잡히던 30~40년 전, 길이 물에 젖어 물 댄 논 같다고 해서 논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징어, 명태가 귀해지고, 길은 시멘트로 포장했지만 이름은 그대로 남아 옛 모습을 상상하게 해준다.

논골담길의 ‘담’은 벽이라는 뜻과 함께 ‘이야기’라는 의미도 있다. 논골 마을의 옛이야기를 하나하나 담고 있다. 발걸음이 더뎌지는 이유다. 마을 구석구석 이어진 논골담길은 1길과 2길, 3길과 등대오름길 등 네 갈래로 나뉘어 있다. 논골 1길은 고기잡이를 하며 살던 동해사람들의 이야기를, 논골 2길에는 옛 풍경을 담고 있어 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바다를 보며 걷고 싶다면, 등대오름길을 선택한다. 짙푸른 바다를 끼고 고즈넉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풍차와 바람개비가 어우러져, 사진을 찍느라 걸음이 자꾸 멈춘다. 논골담길에 갈 때는 여유를 두고 가는 게 좋다. 아기자기한 카페에 앉아 엽서 한 통 쓰다 보면, 여행이 더 특별해지기 때문이다. 길 끝에는 바다뿐만 아니라 동해시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묵호등대가 우뚝 서 있다. 1968년 제작된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의 촬영지로, 등대 앞에는 호젓하게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동해의 가을, 푸르름 가득 한 무릉계곡

논골담길에서 낭만을 만난 후에는 가을을 만끽하기 위해, 무릉계곡으로 향한다.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맑은 공기가 더없이 반갑다. 여름의 계곡이 싱그러움을 안겨준다면 가을의 계곡은 인생의 깊은 맛을 음미하게 한다. 1977년 국민 관광지 1호로 지정된 무릉계곡. 동해의 명산인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바위와 폭포, 그리고 나무들이 어우러져 황홀한 풍광이 펼쳐진다.

계곡에 들어서면 2000여 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를 만난다. 무릉반석이다. 바위 위로 맑은 물이 흘러, 보는 이의 마음까지 후련하다. 조선을 대표하는 명필가 봉래 양사언 선생을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새겨놓은 글도 볼 수 있다. 무릉반석을 지나면 단아한 사찰인 삼화사가 나타난다.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로, 매년 10월 마지막 주에는 국행수륙대제를 거행한다. 국행수륙대제는 물과 땅에서 떠도는 넋을 위로하기 위한 불교 의식으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5호다. 삼화사를 둘러본 후 30분쯤 오르면 장엄한 장군바위가 여행자를 맞는다. 이어서 이끼가 절벽을 감싸고 있는 선녀탕과 단아하게 물줄기가 떨어지는 쌍폭포가 나타난다. 사이좋게 마주 보고 흐르는 물줄기가 장관이다.

돌아올 때는 하늘 문을 통한다. 가파른 계단 덕분에 손에 땀을 쥐며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른다. 고생은 잠시, 하늘 문만 지나면 확 트인 하늘이 등장한다. 무릉계곡의 절경은 덤이다. 오래된 소나무와 장엄한 산, 울긋불긋 옷을 갈아입은 단풍까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신선이 앉았던 바위’라는 전설이 내려오는 신선바위를 비롯해 거북이 모양을 한 거북바위 등 기암괴석들을 찾아보는 것도 특별한 즐거움이다.

출렁다리로 매력 더한, 추암해변

동해를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곳이 추암해변이다.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화면으로 나오는 촛대 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바다 가운데 높이 5~6m로 불쑥 솟아있는 촛대 바위의 생김은 보고 또 봐도 신비롭다. 해안절벽과 기기묘묘한 바위섬이 장관을 이룬다. 이름 없는 바위도 감동을 안겨준다. 억겁의 세월 한자리에 앉아 파도를 맞고 있는 바위들. 동해의 격렬한 파도를 다 받아치는 의연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돌이 숲을 이루는 곳이 나타난다. 조선 세조 때 한명회가 절경에 감탄해 ‘파도 위를 걷는 것 같다’는 의미의 ‘능파대(凌波臺)’라 불렀다.

추암해변 주변에는 1361년 고려 공민왕 때 처음 지어진 해암정, 길이 72m의 출렁다리가 있어, 함께 둘러 볼 만하다. 또 해돋이도 보고 물놀이도 할 수 있는 캠핑장이 가까이 마련되어 있다. 캠핑장에서 바다까지 단 1분, 가을 바다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