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사건의 재구성 및 과학적 조사방법론

화재 사건의 재구성 및 과학적 조사방법론

글 이승훈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 공학박사

과학적 조사방법론은 현장에서 수집된 증거로부터 결론에 이르는 절차와 방법에 대한 논리적 설명을 담고 있으며 이 방법의 준수는 제한된 증거들로부터 고려할 수 있는 거칠고 무성한 가설들을 순도 높게 정제해 가는 과정을 도울 것이다. 방법론의 설명에 앞서 현장에서 발견되는 증거들이 어떻게 재구성에 활용되는지, 그 관계와 체계를 이해하는 것은 과학적 조사방법론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는 본고에서 화재 및 폭발 조사에 염두를 두고 그에 대한 예를 들어 설명하였지만 기타 법과학 분야의 종사자뿐만 아니라 사건, 사고를 풀어가는 관계분야의 초임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흔히 어떠한 증명을 위한 자료에 대한 용어로서 ‘증거’를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하지만 범죄의 재구성 분야에서는 증거(evidence), 이벤트 세그먼트(event segment)와 이벤트(event)로 단계적으로 구분하여 표현된다. 증거(evidence)는 단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자료를 말한다. 구분된 단계에서 증거의 조합으로 단편적 사실인 이벤트 세그먼트(event segment)를 증명하고 이렇게 증명된 단편적 사실을 조합하여 침입, 발화, 연소 확대 등 이벤트(event)를 증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벤트가 모여서 화재 및 폭발 등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부터 시작해서 시간대별 이벤트, 결론에 이르는 사건 전체를 증명할 수 있다. 즉 증거들이 모여 이벤트 세그먼트가 되고, 이벤트 세그먼트가 모여 이벤트가 되며, 이벤트가 모여 사건 전체를 재구성할 수 있게 된다.

증거와 재구성 관계도
[그림 1] 증거와 재구성 관계도

직소퍼즐 이론

범죄 또는 화재사건의 재구성은 직소퍼즐을 맞추는 것에 비유되고는 한다. 하나 하나의 작은 증거들이 모여서 현장 전체를 구성해 나간다는 공통점으로 인해 범죄 재구성 관련 강의나 교재에서 직소퍼즐이론은 늘 거론된다. 양자를 비교하였을 때 일부는 유사하지만 다음과 같은 중요한 부분에서 다른 점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다른 점을 설명할 때에도 여전히 직소퍼즐을 인용하였을 때 설명과 이해가 가장 쉽고 빠르다.

우리들이 여가를 즐기는 직소퍼즐은 완성되었을 때의 전체적인 밑그림을 이미 알고 시작한다. 그리고 손에 주어지는 퍼즐조각은 모두 이 완성된 그림의 일부이며, 별도로 더 수집해야 할 필요가 없이 모든 조각을 빠짐없이 들고 시작한다. 이에 반해 사건의 재구성 과정은 완성되었을 때 어떤 그림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그리고 이미 상당히 많은 조각을 잃어버리고 몇 개 안되는 퍼즐 조각은 다른 그림의 퍼즐조각들과 뒤섞여 구분조차 어렵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주어진 그림을 완성해 가는 것이고, 불충분한 퍼즐조각에 의한 미완성의 그림을 바라보며 최종적인 그림의 내용을 추론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과학적 화재조사 방법론1)

과학적 방법론은 화재 또는 폭발사고의 조사는 파괴된 현장으로부터 증거물을 수집하고 이것들이 내포하고 있는 법과학적 의미를 분석하여 화재 또는 폭발과 관련된 일련의 이벤트들을 재구성하는 과정의 체계적 접근 방법에 대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어떤 화재 및 폭발 현장이 모든 측면에서 검토되었다는 것을 보증 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화재현장의 분석과 판단을 위해 요구되는 모든 과정에 과학적 방법에 기초한 체계적인 조사가 적용되어야 한다.

화재조사관은 자신의 결론에 대한 타당성과 과학적 방법이 적절하게 적용되었음을 보장하기 위한 분석 틀로서 과학적 조사 방법론의 체계적 단계와 절차를 따라야 한다. 이 과학적 조사 방법은 다양한 과학 분야를 이끌었던 연구자들에 의해서 오랫동안 다듬어지고 사용되어 왔으며 여전히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다. 화재조사 분야에 있어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과학적 화재조사 방법론의 체계도
[그림 2] 과학적 화재조사 방법론의 체계도

1단계 : 과학적 방법의 필요성과 문제의 정의

첫 번째 단계는 해결해야 하는 어떤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인데, 화재 또는 폭발 사건이 발생하였다면 사건들을 충분히 조사해야 하며, 이로써 유사한 사건, 사고들을 예방할 수가 있다.

화재조사관이 현장에 도착하거나 어떠한 과제가 주어졌을 때 화재조사관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하며 이것은 화재조사관이 팀 내에서 담당한 직무나 역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화재조사관에게 주어진 문제는 발화부와 발화원인에 대한 판단(발화원인)일 수도 있고, 화재가 어떻게 확대(확대원인)되었는지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사망자가 있는 경우 사망원인(피해원인)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일 수도 있다. 화재조사관이 최종적으로 증명해 내거나 확인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단계이다.

조사관은 문제의 정의를 통해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해결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

2단계 : 자료 수집

조사관은 현장에 대한 체계적인 평가에 착수하고 이미 정의된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자료들을 수집해야 한다.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수집된 실증적 자료는 이론에 근거한 것이기 보다는 실질적인 측정, 관찰 또는 직접적인 감각과 경험에 근거한 사실적인 자료들이다. 이 단계에서 수집되어야 하는 자료는 일반적으로 다음의 것들이 포함될 수 있지만 반드시 여기에 국한되지만은 않는다. 그러나 이 자료들은 반드시 검증 가능하고 사실로 알려진 자료들이어야 한다.

수집된 자료들은 추후 가설설정의 재료가 되며 또 다시 가설을 검증하는 도구가 된다.

■ 화재패턴, 가연물 하중, 환기, 건물의 구조 등 물리적 증거
■ 연구소(laboratory) 분석을 위한 연소 잔해의 샘플 등 시료의 수집
■ 연구소의 분석 결과들
■ 목격자의 진술 기록
■ 사진, 스케치, 노트를 이용한 현장 기록
■ 경찰서, 소방서 등 관공서의 화재 관련 기록 및 보고서
■ 선행 현장 조사관의 결과 또는 기록

조사관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가설을 검증하고 입증하기 위해서는 적절하게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관계자들은 시간에 지남에 따라서 기억이 희미해지기 때문에 면담 당시에 주고받은 문답의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화재 이후 현장이 파괴되거나 또는 보수될 경우에는 더 이상 현장으로부터 추가적인 자료를 얻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현장 조사는 단 한 번의 기회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하며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3단계 : 자료의 분석

이 단계는 가설을 설정하기 위해 수집된 모든 증거와 자료의 법과학적 의미를 평가하고 객관적으로 조사하는 단계이다. 이과정은 가설을 설정하기 위한 기초가 되는 단계이며 수집된 자료의 의미를 분석하여, 분류하고 관련성이 있는 것들끼리 배열하는 과정이다.

수집된 자료는 분석을 수행하는 조사관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 교육·훈련 수준, 전문성 등에 의해 그 가치가 결정된다.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조사관일수록 유의미한 증거를 발견해 낼 확률이 높고, 증거로부터 더욱 다양하고, 가치가 높은 법과학적 의미를 이끌어 낼 수 있다. 현장으로부터 많은 자료를 수집할 수 없는 만큼 발견된 증거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4단계 : 가설의 설정

가설설정은 정의 내렸던 문제의 답을 얻기 위해 시도하는 과정이며, 설명해야 하는 어떠한 현상에 대한 원인, 시간별 이벤트, 최종 상태에 이르는 일련의 스토리, 즉 가설을 추론해 내는 과정이다. 조사관은 자료의 분석을 통하여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한 개 또는 여러 개의 가설들을 설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은 귀납적인 추론에 의한다. 귀납적 추론이란 각각의 의미를 가지는 증거들을 순서에 맞게 배열하고 조합하여 이들의 전체적인 의미를 무리 없이 포괄할 수 있는 어떠한 가설을 그려내는 과정이다. 추정에 의한 자료나 화재현장과 관련되지 않은 자료가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

귀납적 추론 : 개별적인 여러 사실이나 현상으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내는 추리의 방법

예들 들어 화재조사관이 깨진 창문(증거)을 살펴보았을 때 파괴단면의 물결무늬(증거)와 방사형 파괴선(증거)을 발견하였고, 화재이전에 깨진 사실(증거)을 발견하였다면 이를 통해 외부침입(가설1) 또는 창문을 통한 불씨의 투기(가설2) 등의 가설을 설정할 수 있다.

화재조사관은 자료를 분석할 때 사실로 확인된 실증적 자료만을 사용해야 한다. 확인할 수 없는 자료 또는 검증되지 않은 자료를 가설설정 과정에 활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 불분명한 증거를 억지로 끼어 맞추려 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나아가 사건의 재구성에 치명적인 실수를 할 수 있게 된다.

5단계 : 가설의 검증

화재조사관은 앞서 귀납적 추론을 통해 설정하였던 여러 개의 가설에 대한 검증을 수행하여 최종적인 가설 또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가설 검증은 다양한 형태를 통해서 할 수 있지만, 화재조사 분야에서는 대부분 연역적 추론에 의해 이루어진다.

연역적 추론 : 전제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추리 방법

연역적 추론이란 이미 설정된 가설을 전제로 두고 현장에서 발견된 각각의 증거 및 기타 자료들과 비교하여 전제가 부합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위의 가설의 설정 단계에서 들었던 예를 이어서 설명해 본다면 조사관은 이미 창문의 깨진 모습을 발견하고 창문을 통한 외부침입(가설1) 또는 불씨 투기(가설2)의 가설들을 설정하였다. 이때 창문을 통해 누군가 침입하였다는 가설(가설1)은 창문의 깨진 크기가 사람이 넘어오기 불가능한 정도로 작다면(가설과 충돌하는 증거가 있다면) 이 전제(가설1)는 부정된다. 이와 같이 증거와 사실을 통해 가설의 적합성에 대한 인정과 부정을 구분하며 검증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조사관들은 자료와 증거 전체가 어떠한 가설을 지지하거나 지지를 하지 않거나 또는 대립되는지를 확인한다. 조사관의 지식과 경험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검증된 선행연구 및 문헌자료, 실험결과, 시뮬레이션 등 모든 확인된 자료와 사실, 가용한 모든 것을 이용하여 가설에 이의를 제기하고 검증해야 한다.

설정된 여러 개의 가설은 이 과정을 통해 하나씩 배제하며 추려 나갈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하나의 명확한 가설이 남을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 훌륭한 가설 검증의 끝에는 단 한 개의 가설만이 남아 있어야 하며 최종 가설은 확인된 증거와 사실들 및 기타 자료에 의해 모두 지지되어야 한다.

만약 이 과정을 통해서도 여러 개의 가설이 남게 되거나 최종 가설이 그 증거나 사실들에 의해 지지가 되지 않는다면 그 조사관은 이전 단계인 자료의 수집, 자료의 분석, 가설설정 중 하나로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그 단계부터 단 한 개의 가설이 모든 증거 또는 사실로부터 지지가 되고 있다는 점이 명확해질 때까지 그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명확해지지 않는다면 ‘미상’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가설은 합리적인 이의 제기를 견디고 살아남아야 한다.

다른 조사관들과 함께 그 가설을 검증하거나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공개토론을 할 수도 있다.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당시의 조사 절차와 결론을 검토하고 가설에 적절한 이의를 제기해준다면 가설의 검증에 도움이 될 것이다.

가설 검증은 다른 사람들의 비판적 검토나 이의 제기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의한 비판적인 평가도 필요하다. 이 자기 검증과정은 조사관이 가설에 대하여 스스로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이며. 조사관은 이 과정을 통해서 그 가설에 대한 확신의 수준도 결정해야 한다.

다음 표는 조사관이 표현할 수 있는 가설에 대한 확신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이 확신 수준은 화재조사관이 그 최종가설에 대하여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조사관에 의해 수집되고 분석되고 검증된 자료에 대한 확신에 근거한다. 이러한 확신의 수준은 경찰수사 또는 대책 수립, 민·형사 소송 등 조사관의 보고서를 인용하거나 참고하여 다른 절차를 진행할 때 그 결론을 어떻게 수용하고 사용할지에 대한 고려에 영향을 미친다.

가설의 검증에 있어서 화재조사관이 수집된 증거 또는 기타 자료를 비교한 것 외에 가설에 이의를 제기하는 다른 유형의 질문에는 다음의 내용들을 예로 들 수 있다.

■ 그 사실(증거)들을 다른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 만약 그렇다면, 왜 당신의 해석이 진실일 가능성이 더 높은가?
■ 가설에 있어서 취약점은 무엇인가?
■ 그 가설을 반박한다면 어떠한 점을 지적하고, 어떤 방식으로 논쟁할 것인가?
■ 가설과 부합하지 않는 사실은 있는가?
■ 가설을 지지하는 검증된 연구가 있는가?
■ 다른 사람에 의해서도 가설이 증명될 수 있는가?
■ 가설이 타당한가?

6단계 : 최종가설의 선택

과학적 방법을 이용한 마지막 단계는 최종가설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단계는 앞 단계가 완전하고 주의 깊게 수행된 이후에 이루어진다. 만약 모든 다른 합리적인 가설들을 신뢰할 수 있을 만큼 검증하고 배제하였다면, 조사관은 남아있는 가설을 최종 가설로 채택하여 결론지을 수 있다. 그러나 남겨진 마지막 가설도 충분히 신뢰할 수 있을 만큼 검증되어야 하며, 단순히 단지 다른 가설들이 배제된 이후에 남겨졌다는 이유로 선택되어서는 안 된다. 선택된 최종 가설은 독립적으로 검증하였을 때에도 역시 증거에 의해 지지되어야 하며 사실들과 부합해야한다. 그리고 다른 가설들과 마찬가지로 엄격하게 반박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결코 손쉬운 방법을 취해서는 안 된다.

참고문헌

1) 이승훈 외 9명 역. 화재조사론(원제:Fire Investigator). 2018. 화수목출판사. pp.1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