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승훈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화재폭발조사팀
일상적으로 사무실 또는 일반적인 주거 시설에서 볼 수 있는 전기 배선은 겨우 콘센트에 연결된 멀티콘센트 또는 그 부하측에 연결된 전기기기의 전원코드가 전부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들여다보지 못하는 천정 내부 또는 인테리어 마감재 내부에는 이곳저곳으로 진행하며 서로 겹쳐져 있는 복잡한 배선들이 존재한다. 화재가 발생하면 열과 화염이 확산되는 과정에 이들 배선의 피복이 소실되면서 활선상태의 전선이 서로 접촉하여 합선이 발생한다. 배선은 합선의 아크에 의해서 용융된다. 어떤 배선에서 아크가 발생하면 순간적인 고열과 압력 때문에 주변에 스파크를 튀기며 배선은 녹아 끊어지게 된다. 이와 같이 전기적인 열에 의해 녹은 흔적을 합선흔적 또는 아크흔적이라고 한다. 합선지점에서 분리되므로 합선 발생지점 기준의 부하측으로는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 이 때 전원측으로는 여전히 전기가 흐르는 상태이다. 합선으로 분리된 부하측은 전기가 흐르지 않기 때문에 확산된 화재에 의해서 피복이 소실되는 경우에도 합선은 발생하지 않는다. 화재조사관은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여 동일회로 상에서 여러개의 합선흔적이 발생하였더라도 최종부하측에서 보이는 합선흔적은 현장에서 가장 먼저 발생하였다는 것으로 간주하며 즉 최종부하측 합선의 위치는 발화부 또는 발화부와 매우 인접할 것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발화부를 찾는 중요한 기법인 아크매핑이다. 건물 내 거미줄처럼 설치되어 있는 전기배선은 아크매핑을 통해 발화부를 추적할 수 있게 도와준다.
심하게 연소된 현장에서 목재, 가구, 내장재 등의 화재패턴은 대부분 소실되어 버리는 반면 융점이 1083℃인 구리의 아크흔적은 비교적 큰 변형이 없이 관찰되는 경우도 많다. 발화부를 판단할 때 대부분은 화재패턴과 함께 검토되지만 화재패턴이 소실된 경우에도 아크흔적이 관찰되어 이것만으로 발화부를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또 기타 물질에서 보이는 화재패턴을 통해 화염의 이동방향을 판단하는 경우 조사관의 경험과 주관이 관여될 여지가 많다는 우려가 있으나 이에 비하여 아크매핑은 보다 객관적인 지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크매핑은 현재의 화재조사관들이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는 기법 중 하나이며 이러한 방법을 통해 결정된 발화부에 대하여는 더 심도 있는 검토를 요구하지 않을 만큼 충분한 신뢰를 보인다.
아크매핑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발화부 판단을 위해 객관적인 방법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나 아크매핑의 배경이 되는 과학을 고려할 때 실무에서 상당부분 논리가 남용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필자는 지난 몇 년간 이에 대하여 고민해 왔으며 “화재조사 측면에서 전기적 특이점의 법과학적 가치에 대한 고찰”, “기기 내부의 전기적 특이점에 대한 고찰” 등 몇 개의 사례 연구를 통해 남용사례에 대하여 경고하기도 하였다.화재현장에서 발견된 아크의 해석에 대한 한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경우에 예를 들어 보았다.
가. 현장에서 양단이 절단된 전선은 전원과 부하의 방향을 확증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발견된 지점의 위치 가 차단기 방향일 경우 전원측으로 간주한다. 이는 대다수의 관습적인 배선설치 방법을 통해 유추하는 것이지 논리적으로 의심이 없는 판단이라고 할 수 없다.
나. 병렬구조 상호간에는 전원측과 부하측의 계념을 적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회로의 검토 없이 곳곳에서 발견되는 아크흔적을 상호 비교하여 조사관의 주관적 판단으로 선후 관계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다. 아크가 발생한 이후에도 배선이 분리되지 않거나 분리된 선이 다른 배선과 접촉하여 회로가 구성되는 경 우에 합선흔적 발생순서는 전원측 이후 부하측에서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최종부하측 합선이 늘 먼저 발생한 합선이라고 보는 것은 오판의 여지가 있다.
라. 판단한 발화부에서 별도의 발화원인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 아크흔적을 발화원인으로 지목하는 경향이 있다.
마. 부하측에서 발생한 아크로 회로 전체에 과전류가 흐르면서 전원측에서 발화하는 경우도 있다.
바. 기기의 내부에서 발견된 아크흔적은 최종부하측 계념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외부 화염에 의해 인접한 기기의 내부 배선에서 아크 흔적이 발견되는 것은 여러 가지 경위의 예에서 누 구나 인정하지만 조사관의 주관적 판단으로 강하게 주장하는 경향은 조사 실무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최근 아크매핑에 유용성에 대해 의문을 재기하였던 Babrauskas의 연구와 이에 대응하는 미국 주류·담배·화기 단속국인 ATF(Bureau of Alcohol, Tobacco, Firearms and Explosives)의 연구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이 기법에 여전히 많은 지침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하였다. 그 연구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Arc Mapping : New Science or Myth?”[1] 이것은 은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2017 년 Fire and Material Conference 에서 발표되었던 주제이다. 이 연구는 조사관이 전기 및 전기 시스템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한다는 것과 같은 몇 가지 유용한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였지만 화재조사에서 아크매핑의 프로세스에 대한 오도 된 견해를 제시하고 불필요한 제한을 제안하였다.
연구자에 의하면...
“아크매핑은 매우 제한적인 현장에서만 적용 가능하다.”
“주제에 대한 공학 원리와 실물화재 실험 연구를 신중하게 고려하면 발화부에 대한 지표로서 아크매핑의 관련성과 중요성이 과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대다수의 경우, 과학적 원리에 의하면 아크매핑을 통해서 발화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유효한 결론을 도출 할 수 있는 경우는 특별한 지역 내에서 화염이 확산된 부분적인 방향을 알 수 있지만 전체 현장에서 발화부를 확인하기에는 불충분하다. 분기회로에 심각한 아크 또는 용접 아크가 있고, 부하측에 추가적인 아크가 있는 경우에는
부분적인 화재의 방향을 신뢰할 수 있다. 그러나 실험 데이터에 따르면 건물의 분기 회로에서 아크매핑에 의해 유효한 결론을 낼 수 있는 이러한 조건을 나타낼 확률은 1 % 미만이며 0.7 %로 계산된다. 이것은 솔리드 코어 컨덕터(Solid-core conductor)에 해당되는 것이며 연선 와이어의 아크에 대하여는 통계적 결론을 도출 할 수 있을 만큼 연구가 충분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발표된 실험결과는 아크매핑을 통해서 발화부를 판단한다는 것에 대하여 지지하지 않는다.”
“.... NFPA 921의 아크매핑 방법에 포함된 일반적인 유용성을 감소시키고, 아크매핑이 발화부 판단을 돕기 위한 방법으로서 가지고 있는 한계점과 상황에 대해 보다 명확한 논의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ATF는 저자에게 중요한 부분의 수정을 권고하였으나 저자는 이에 관계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공식적인 발표를 진행하였다. 발표 이후 ATF는 영향력이 있는 저자의 오도된 연구로 인해 조사관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여 해당연구에 대하여 기관차원의 공식적인 문서를 발표하였으며 그 골자는 다음과 같다.
이 논문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아크매핑에 대한 근거 없는 통념(myths)이 오늘날 화재 조사에 일반적으로 적용된다고 말했다.
가. “주어진 지역에서 아크 비드가 많다는 것은 해당 지역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을 의미하며 아크 비드가 적
다는 것은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1) “An abundance of arc beads at a given locale means that fire originated in that area, while
a paucity of arc beads indicates that it did not.”)
나. “회로 상에 여러 개의 아크가 존재할 때, 아크의 방향은 반드시 전원측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다. “전기 제품이 외부 화염에 의해 소실되었을 경우 기기의 내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아크는 주로 기기의 외 부 쪽에 있으며 내측 깊은 곳의 아크는 그 장소에서 화재가 발생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근거 없는 통념은 이 분야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지침일 뿐이다. 이러한 통념은 가설로 시작되었지만 그 이후로 오늘날 사용된 방법론에 비추었을 때 틀렸음이 입증되었다. 아크에 의해 용융된 흔적으로 부터 이끌어 낼 수 있는 유일하게 명확한 판단은 화재가 발생할 때 전도체 또는 구성 요소에 에너지가 공급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모텔에서 수행한 3회의 실물화재 실험 결과를 제시한 West와 Reiter의 2005년 논문을 인용했다. 저자는 이 연구의 결과가 좁은 지역에 아크흔적이 집중되는 아크 사이트가 없기 때문에 발화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없고 아크매핑이 발화부의 영역을 좁히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결론에서는 실내의 회로 구성이 고려되지 않았다. 이 논문의 아크매핑 다이어그램은 [그림 1A, 2A 및 3A]에 나와 있다. 화재가 발생한 발화부를 나타내는 빨간색 원이 그림에 표시되어 있다. 회로 구성을 고려하지 않은 아크매핑은 발화부 결정에 거의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FRL에서 제안한 분석 방법은 회로 진행 방향에 따라 회로와 아크 위치를 색으로 구분하는 것이었다. 각 회로의 전원은 각 라인의 끝 부분에 사각형으로 표시했다. 각 회로의 "부하"측은 열린 상태로 남겨 두었다. 회로의 색상 코딩은 [그림 1B, 그림 2B 및 그림 3B]에서 볼 수 있는데, 위아래로 진행하는 회로에서 아크가 집중된 공간(파란색 타원)이 있으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는 회로에서 아크가 집중되는 공간(녹색 타원)을 그릴 수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아크매핑을 하면 각 타원이 겹치는 부분에 발화부가 위치한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화재 패턴, 목격자 진술 및 화재 역학과 같은 다른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 이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Babrauskas와 ATF는 기본적으로 아크매핑에서 근거없는 통념으로 3가지를 지목하였는데 이는 국내의 현행 화재조사환경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해석이다. 국내에서 아크매핑과 관련하여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판단과 그 근거를 지목한 것이며, 이를 “myths" 라고 치부할 만한 근거가 없는 통념이라고 하였다. 그러한 논리가 근거가 없는 통념이라는 점에서 Babrauskas 와 ATF의 의견은 일치한다. 다만 Babrauskas는 아크매핑을 적용하여 발화부를 판단할 수 있는 현장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설명하였던 반면 ATF는 아크매핑에서 요구되는 사전적 검토와 절차를 지킬 경우 여전히 발화부 판단에 유용한 방법이라고 대응하였다.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화재 또는 전기현상에 대하여 현대의 과학은 완벽하게 해석해내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수준의 과학을 통해서 최대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조사관 자신이 알고 있는 단편적인 과학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판단을 남용한다면 오류가 증가할 것이며 점차 신뢰를 잃게 될 것이므로 늘 겸손한 마음으로 주의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