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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용 고층건축물 화재사례 및 안전대책


박수영
화재보험협회 재난안전연구팀 책임연구원,
공학박사

1. 머리말

  2017년 6월 14일 새벽 1시경, 영국 웨스트 런던 켄징턴 북부에 있는 24층 임대아파트 그렌펠 타워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건물은 전소되었고, 79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얼마 후 2017년 8월 4일 새벽 1시경,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위치한 토치 타워에서 비슷한 화재가 발생하였다. 화재로 인해 38개층에 걸쳐 64세대의 소손이 발생하였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두 건물의 공통점은 모두 고층건물로서 건물용도가 아파트이며, 외장재로 가연성 알루미늄 복합패널을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가연성 알루미늄 복합패널은 외벽와 외장재 사이의 빈 공간에 의한 굴뚝효과(Wind tunnel)로 급격히 화재가 확산되는 특징이 있어, 이 두 화재의 거동은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렌펠 화재는 대규모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며, 토치 화재는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화재사례에서 두 건물이 어떠한 차이점이 있었는지 살펴보고, 국내 주거용 고층건축물의 현황은 어떠한지 확인하였다. 또한 이러한 건축물에서의 안전대책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

2. 그렌펠 타워(Grenfell tower) 및 토치 타워(Torch tower) 화재사례

그렌펠 타워와 토치 타워 화재사례를 소개하면서, 두 화재의 대응방법, 소화설비 및 구조현황 등을 살펴보자.

[그림 1] 그렌펠 타워 화재 전후 모습
[그림 2] 토치 타워 화재 전후 모습

  그렌펠 타워와 토치 타워는 층별 용도에서 약간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주거용 고층건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랜펠 타워는 1974년 공공 임대주택으로 완공된 후, 2016년 리모델링을 완료하고 사용 중이었으며, 토치 타워는 2011년 완공되어 사용되다가 2015년에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표 1>은 각 건물 및 화재에 대한 개요를 나타낸다.

<표 1> 그렌펠 타워 및 토치 타워의 구조 및 화재개요

  그렌펠 타워 토치 타워
건물규모 24층
[G~2층 주거 및 업무시설 , 3~23층 아파트]
86층
(세계 5번째 주거타워, 높이 337 m)
건물용도 아파트(127세대) 아파트(676세대)
발화지점 4층 63층
발화원인 냉장고 전기합선 미상(고온환경으로 인한 발화 추정)
화재진행상황 00:54 - 4층에서 화재발생(추정)
01:00 - 화재 전층으로 확대,
             소방당국 60여명 구조
05:00 - 1차 화재진압 완료
10:00 - 건물전소, 부분적 불씨만
             남기고 화재 진압완료.
최종 79명 사망
01:00 - 63층에서 화재발생(추정)
             입주민 비상계단을 통해
             대피 시작.
             화염은 발생층에서 아래
             위로 20층가량 확대.
03:00 – 화재 진압완료.
최종 사망자 없음.
[그림 3] 그랜펠 타워 입면도
[그림 4] 토치 타워 입면도

  그렌펠 타워와 토치 타워 화재는 외장재의 연소특성으로 인해 급격히 화염이 확산된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건물 소화설비나 피난시설 등에서 다른 부분이 있었다.

  화재가 발생하면 초기 소화를 위해 스프링클러가 작동한다. 스프링클러는 화재 초기에 확산을 능동적으로 막을 수 있고, 정상적인 경우에는 완전 소화까지 가능하다.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토치 타워와는 달리 그렌펠 타워에서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다. 또한, 화재가 발생하면 우선적으로 재실자의 안전을 위해 피난방송(화재경보)이 실시되어야 하는데, 토치 타워와는 달리 그렌펠 타워에서는 중앙 화재경보설비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화재시 “stay put(집안에서 대기)”정책이 시행되고 있었다.

  초기 소화에 실패한 경우, 방화구획으로 일정 시간 동안 화재확산을 막고 피난이 실시되는데, 일반적으로 아파트의 경우는 하나의 세대 단위로 방화구획을 설정하고 있다. 방화구획이란 화재의 확산을 막고 피난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구획실을 내화구조의 벽, 바닥, 방화문, 내화충전구조 등으로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아파트 평면의 방화구획 중에서 중요한 부분은 현관문을 방화문으로 하는 것인데, 이는 현관에서 나오는 부분이 피난로 또는 피난계단과 접해 있기 때문이다. 현관문을 방화문으로 강제하지 않은 그렌펠 타워에서는 화염 및 연기가 현관문을 통하여 피난로 및 피난계단으로 확산되었을 것이며, 더욱이 하나밖에 설치되지 않은 피난계단이 연기로 오염되어 재실자들이 피난을 할 수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았던 토치 타워와는 반대로 그렌펠 타워에서는 이와 같은 원인들로 인하여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림 5] 그렌펠 타워 평면
* 세대현관문 일부만 방화문(푸른색)
* 직통계단 1개(붉은색)
[그림 6] 토치 타워 평면
* 세대현관문 모두 방화문(푸른색)
* 직통계단 2개(붉은색)

  국내에도 주거용 고층건축물 외장재 화재사례가 있다. 2010년 10월 1일 11시 30분경, 부산 해운대구의 고급 오피스텔인 우신골든스위트 4층에서 전기 누전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였다. 화재는 알루미늄 복합판넬 외장재를 타고 빠르게 확산되었고, 화재발생 30분만에 38층까지 화염이 확산되었다. 건물전체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화재가 발생한 4층 린넨실에는 없어 초기진화에 실패하였고, 가연성 외장재로 인하여 빠르게 화재가 확산되었으나, 건물외부 유리창이 특수강화유리로 되어있어 건물내부로 화재 확산이 거의 되지 않아 피해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그림 7] 우신골든위트 화재 모습
[그림 8] 화재 개요

3. 국내 고층건축물 현황

  2017년 8월 발표된 “고층건축물 화재안전대책“에 의하면, 국내에는 30층 이상의 고층건축물은 총 2,315동으로 수도권에 56%(1,299동)가 입지하고 있고, 용도는 아파트가 92.3%(2,138동)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 208동은 알루미늄 복합판넬로 인한 부산의 우신골드스위트 화재(2010년)를 계기로 개정된 건축법(2012년 3월 시행)을 적용하여 불연성 외장재가 사용되었다. 그 외 2,107동에 대하여 전수조사한 결과 135동에 가연성 외장재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135동에는 공동주택이 97동으로 가장 많았으며, 업무시설 34동, 숙박시설 2동으로 확인되었다.

<표 2> 국내 고층건축물 지역별 현황(단위: 동)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세중 경기 강원 충청 전라 경상 합계
공동
주택
328 328 139 333 31 82 104 37 512 7 65 34 138 2,138
공동
주택 외
78 36 - 19 2 - - - 29 - 10 1 2 177
합계 406 364 139 352 33 82 104 37 541 7 75 35 140 2,315

<표 3> 국내 고층건축물 외장재 사용현황(단위: 동)

공동주택 업무시설 숙박시설 기타 합계
가연재 97 34 2 2 135
불연재*(난연재) 2,017 102 5 15 2,139
미상** 24 21 4 3 41
합계 2.138 146 11 20 2,315

* 불연재 유형: 콘크리트(일반아파트), 유리, 석재 등
** 미상: 도면 누락, 시공사 폐업 등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건축물

4. 그렌펠 화재 문제점에서 본 국내 주거용 고층건축물 안전대책 및 문제점

  그렌펠 화재시 큰 피해를 야기하였던 원인인 가연성 외장재, 스프링클러, 대피공간, 직통계단, 비상용승강기에 대하여 국내 실정을 살펴보았다.

가. 가연성 외장재

  국내에서도 알루미늄 복합패널이나 드라이비트 등의 가연성 외장재로 인한 화재(부산 우신골든스위트 화재,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 등)로 그 위험성을 인지하여, 2012년 3월 건축법에서 30층 이상 고층건축물에 가연성 외장재 사용을 금지하였고, 2015년 10월 그 대상을 6층 이상으로 규정하여 더욱 강화하였다. 하지만, “고층건축물 화재안전대책“에서 언급한 가연성 외장재가 사용된 고층건축물 135동에 대해서는 건축당시 적법하였기 때문에 외장재 교체를 강제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나. 스프링클러

  스프링클러는 화재 시 초기에 소화할 수 있는 대단히 효과적인 수단으로써,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층수가 11층 이상인 특정소방대상물의 경우 모든 층에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더라도 2017년 2월 4일 발생한 동탄메타폴리스 상가 화재처럼 내부공사로 인한 관리자 소화설비 작동중지 등 관리가 소홀한 경우 심각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다. 피난안전구역

  국내 초고층 건축물이 많아짐에 따라 2012년 1월 건축법 및 하위규정인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에 피난안전구역의 설치근거 및 기준이 추가되었다. 피난안전구역이란 초고층 건축물에서 화재 등 재난 시 대피할 수 있도록, 방화구획, 배연설비, 특별피난계단 및 비상용승강기, 급수전, 조명설비, 경보 및 통신시설 등을 설치하여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50층 이상 초고층 건축물인 경우 30층마다 1개소 이상, 30층 이상 고층건축물인 경우 정중앙 해당층 ± 5개층 내에 1개소 이상을 설치한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에게 피난안전구역은 아직도 그리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라. 직통계단

  국내에서는 건축법에 따라 건축물의 피난층 이외 층에는 피난층 또는 지상으로 통하는 직통계단을 설치하여야 하며, 공동주택의 경우 거실 바닥면적의 합계가 300㎡이상인 경우 직통계단을 2개소 이상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화재로 인해 한쪽으로의 출구가 사용 불가능한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층별 세대수가 작은 주거용 고층건축물이며 각 세대가 2개 이상의 직통계단을 사용하도록 설계하기 어려운 경우, 세대 내부에 방화구획 된 대피공간을 만들거나, 인접 세대와의 경계벽을 파괴하기 쉬운 경량구조로 설치하거나 또는 바닥에 하향식 피난구를 설치하여 다른 피난 출구를 만들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피난안전구역과 같이 일반 시민들이 대피공간의 목적, 본인 세대의 경계벽 존재여부, 하향식 피난구의 설치 목적 등을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본인 세대에 파괴하기 쉬운 경계벽이 있으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하여 피난하지 못해 피해를 입은 사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 피난용승강기

  미국 WTC 붕괴사고를 기점으로 초고층 건축물에서는 피난시간을 줄이는 것이 인명피해를 줄이는 방법이라는 것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널리 알려졌고, 그에 따라 피난용승강기가 보급되었다. 피난용승강기는 화재가 발생한 층을 중심으로 피난안전구역과 대피층만을 왕복 운행하는 것으로, 고층건축물에 설치하는 승용승강기 중 1대 이상을 건축법에 따른 피난용승강기의 설치기준에 적합하게 설치하도록 규정되었다(2012년 3월). 다만, 30층 이하 공동주택은 적용을 제외하고 있다.

5. 맺음말

그렌펠 타워와 토치 타워 화재사례를 바탕으로 국내 화재안전 대책수준을 살펴본 결과, 제도적인 부분에서는 지속적으로 개정되고 강화되어 운영되고 있지만 관리적인 부분에서 보완되어야 할 점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먼저 “고층건축물 화재안전대책”에서 조사한 가연성 외장재가 설치된 건축물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입주민들에게도 알려 예방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등 안전의식을 제고해야 한다. 또한 건축물의 개보수 사항이 있을 경우에는 외장재 교체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부공사 등으로 인해 감지기, 소화설비 등을 작동중지하는 등에 대한 규정 및 벌칙을 강화하고, 소방시설 관리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거주자를 위한 소방안전시설, 피난용승강기, 피난안전구역 및 직통계단 등에 대한 교육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판단되며, 주기적으로 예방교육을 실시하여 화재 등 재난 시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