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승훈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화재폭발조사팀
화재현장은 어떠한 물질들이 연소에 관여되었는지에 관하여 다양한 물리적, 화학적 증거들로서 화재조사관이 찾고자하는 답의 힌트를 제공한다. 연소에 관여된 여러 가연물 중 특히 액체인화성 물질은 방화사건과 관련성이 높기 때문에 조사관들이 무엇보다도 관심을 집중해야 하는 중요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액체인화성 물질이 관여되었다는 결정은 그 책임이 무겁고 대부분 화재 동안 또는 화재 직후 완전히 증발되어 현장에서 그 잔해를 발견하고 수집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항상 판단이 망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본지의 지난 호에서 액체가연물의 잔해가 수집되어 화학적 분석에 의한 양성반응을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화학적 분석에 의한 액체인화성 물질 양성반응의 결과가 없이도 현장의 연소흔적 및 기타 등을 분석하는 대안적인 방법이 필요한데 전회의 3차원적 연소흔적에 이어 금회에는 일반적인 화재의 성장속도를 감안하여 섬광화재로부터 정보를 얻는 것이다.
사고에 의한 일반적인 화재와 액체 가연물이 관여된 화재의 성장속도를 비교한다면 이는 액체가연물이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더라도 증발해 버린 액체가연물의 존재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구획실 내에서 발생한 화재는 가연물과 환기에 의한 지배를 받으며 열방출율이 제어되는데 화재 초기에는 구획실 내에 연소에 필요한 산소의 양이 비교적 충분하기 때문에 가연물에 의해 지배되며 가연물의 배열과 물리·화학적 성질에 따라서 화재의 성장이 빠르거나 늦어진다. 다시 말해서 구획실 화재초기의 화세를 결정하는 것은 가연물 조건이다.
대부분의 가정 또는 사무실 등에서 화재가 발생하였을 때 연소에 관여되는 가연물은 고체가연물이다. 전기적인 원인 또는 담배꽁초 등 예상치 못한 사고에 의해 화재가 발생하는 경우는 한 개소에서 작은 불씨로 시작해서 점차적으로 주변가연물로 범위를 확대시키면서 완만하게 성장하게 된다. 이것은 점화 초기부터 성장까지 줄곧 확산연소이며 일반적인 구획실 화재 성장 곡선의 자유연소단계 부분은 서서히 열방출율이 상승하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고체가연물 상황을 가정한 경우이다. 그렇다면 인화성 액체 가연물이 관여되었을 때 전자와 구별될 수 특징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석유류 액체가연물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연물 중 가장 연소가 빠른 가연물이다. 이 때문에 석유류는 연소 촉진제로서 방화범들이 선호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시너, 휘발유 등 저비점의 인화성 액체 가연물은 살포 직후 증발을 시작하며 점화 또는 인화되기 전까지 공간 내에 폭발성 혼합기를 형성한다. 형성된 폭발성 혼합기체는 점화되었을 때 고체가연물과 달리 예혼합연소로서 매우 빠르게 연소하며 소진된다. 형성된 폭발성 혼합기의 양이 많다면 점화되었을 때 폭발이 발생할 수도 있으며, 적을 경우에는 섬광화재에 그칠 수 있다. 액체가연물의 양에 따라서 섬광 화재 이후 바닥에 광범위하게 살포된 액체가연물 액표면에 화염이 쉽게 인화되며 일반적인 고체가연물에 비하여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본 설명의 포인트는 화재 시작단계의 섬광화재는 일반적인 고체 가연물에서 발생할 수 없으며 폭발성 혼합기체를 형성할 수 있는 인화성 액체가연물의 유증 또는 가스에 의한 것이므로 이러한 사실 자체가 증거로서 특별한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그림1]은 일반적인 구획실 화재 자유연소 단계의 성장곡선이다. 일반적인 사고에 의한 화재는 어떤 작은 점화에너지에 의해 화염이 만들어지고, 이 화염이 주변의 고체가연물을 가열, 열분해 시키며 점차적으로 확대된다. 즉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연소 중인 가연물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화재는 완만하게 성장한다. 연소는 빛과 열을 수반하기 때문에 화재의 성장에 따라서 점차적으로 구획실의 온도가 높아지며 밝아진다. 온도가 높아지고, 연소생성물이 증가하면서 구획실 내부의 압력도 비례한다. 이러한 자연스런 연소과정을 외부에서 관찰한다면 작은 불에서 큰 불로 성장하는 듯 약간 밝은 상태에서 점차 환해지는 모습일 것이며, 연기도 처음에는 조금씩 보이다가 점차적으로 짙은 농연이 크게 뿜어져 나오는 상황일 것이다.
섬광화재는 기상의 가연물이 점화이전 공기 또는 산소와 혼합되어 폭발성 혼합기체 상태에서 점화되는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화재가 섬광화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기체가연물의 폭발성 혼합기 상태를 입증한다. 비교적 많은 양의 폭발성 혼합기체의 연소는 폭발이라는 파괴적 현상을 보이지만 적은 양의 폭발성 혼합기체의 연소는 섬광화재라고 하며 그 규모는 폭발에 비하여 크지 않아 일반적으로 압력에 의한 구조물의 파괴 현상 등은 관찰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화재에 비하여 상당한 압력과 빛 열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이러한 효과에 의한 현상들이 관찰될 수 있으며 갑자기 밝아지거나 화염이 문틈이나 창틈으로 솟구치는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 점화되는 순간을 목격한 자가 있거나 원거리에서라도 촬영된 CCTV를 통해서 갑작스럽게 밝아지는 것이 포착되거나 일반적인 화재의 거동과 달리 초기에 상당한 압력상황이 관찰된다면 이것은 섬광화재로부터 화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초기의 가연물로서 유증 또는 가스가 관여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본고에서는 섬광 화재의 원인 중 가스누출에 대하여는 별론으로 하고 액체가연물이 살포된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섬광화재에 집중하여 설명하고자 한다.(섬광화재가 의심되는 경우에는 가스 누출 등에 대한 조사도 반드시 수행되어야 한다. 본고의 취지 상 가스누출 등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음.)
액체가연물이 관여된 현장에서 보일 수 있는 화재성장의 유형은 액체가연물의 양에 따라서 2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그림3]은 구획실내에 비교적 소량의 액체가연물이 살포된 후 대부분의 액체가연물이 증발한 상태에서 섬광화재가 발생한 이후 일반적인 구획실 화재로 진행되는 모습을 묘사한 곡선이다. 보는 것과 같이 폭발성 기체연료가 점화 순간 빠르게 연소한 후 일반적인 고체가연물에 착화되어 인접착화 방식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이다. 외부에서 관찰된 이 화재의 모습은 점화직후 갑작스럽게 밝아지거나 갑작스럽게 화염이 틈새로 분출될 수도 있다. 기상의 연료가 빠르게 소진된 이후 작은 불씨가 다시 성장하면서 화세가 강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살포된 액체가연물이 소량인 경우는 섬광 화재 이후 낱장의 종이, 의류 등 비교적 연소성이 좋은 가연물의 곳곳에서 부분적인 연소를 시작하는데 외관상 화재는 거의 일반적인 고체가연물 화재의 초기 상태로 위축되며 그 후 점차적으로 밝은 빛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위 2가지의 유형은 점화당시 폭발성 혼합기 외에 풀을 이루고 있는 액체가연물이 존재 여부에 대한 차이이며 액체가연물이 관여되었다는 것을 설명함에 있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화재의 시작이 섬광화재로부터 시작되었는다는 점이다.
증발된 유증의 양이 충분하여 점화직후 폭발이 발생한 경우에는 그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므로 기체 가연물 또는 인화성 액체가연물의 관여 여부를 비교적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섬광화재의 사건들은 대부분 화재사건으로 조사가 의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후 화재로 진행된 경우 소화된 후의 화재현장을 조사하는 것만으로는 초기의 섬광화재를 입증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찾기가 곤란하다. 화재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성장하면 조사관이 현장에 도착하였을 때 초기의 화재상황은 거의 완벽하게 소실되어 점화초기의 상황을 유추할 만한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초기의 섬광화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연히 이벤트를 마주친 목격자의 증언, 인근의 CCTV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점화 직후 섬광화재는 급격한 압력을 상승시키기 때문에 화염이 개구부를 통해서 뿜어나가는 듯 압력과 같이 관찰되며, 빠른 시간 내에 기상의 연료가 소진되면 이후 액면에서 증발연소를 하거나 착화가 용이한 고체 가연물의 표면에서 작은 화염연소를 때문에 화염은 거의 일반적 가연물의 초기 단계로 감소한다. 이에 따라서 이에 따라서 목격된 상황과 촬영된 CCTV의 장면은 점화직후 급격하게 화염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또 급격하게 감소한다.
유증의 급격한 연소로 인해 내부의 압력이 급상승 하며 외부로 분출되지만 유증이 소진된 이후 내부는 비교적 소극적인 연소로 복귀하므로 다시 급격히 압력이 낮아지는 상태로 된다. 화재 구획실의 외부에서 관찰하였을 때 유증의 착화되는 순간 화염은 창문 등 개구부로 뿜어져 나가는 듯 압력상황을 보이지만 뒤따르는 상대적 음압에 의해서 곧 바로 개구부를 통해 빨려 들어가듯 화염은 사라진다. 목격자들은 종종 이 광경을 보고 “불꽃이 뿜어져 나오다가 안으로 다시 빨려 들어갔다.”, “뱀이 혀를 낼름거리는 것처럼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풍선처럼 부풀어 나왔다가 들어갔다(어린아이의 목격 진술).”등과 같이 당시의 상황을 다양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공통적인 것은 급작스런 양압에 이어 다시 음압이 발생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구획실 내 섬광화재의 상황과 일치한다.
혼합기를 형성한 유증은 점화 직후 매우 빠르게 확산되며 짧은 시간 내에 완전히 소진된다. 따라서 찰나와 같은 이 순간을 포착하지 않으면 중요한 증거가 보고되지 않은 채로 지나칠 수 있다. CCTV에 촬영되는 순간적인 섬광은 초당 30개의 프레임으로 연결되는 동영상에서 단지 몇 개의 프레임에 나타나고 사라질 만큼 매우 짧은 순간이다. 만일 동영상을 집중해서 관찰하지 않는다면 분석관은 인지하지도 못할 수도 있다. 빛이 밝아지는 속도와 다시 위축되는 상황을 관찰하는 것이므로 원거리에서 촬영된 영상 또는 다른 물체에 반사된 빛을 분석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사례 1> 다음 그래프는 이해의 편의를 위해 CCTV에 촬영된 화재건물의 창문 내부의 화재로 인한 불빛(광량)의 변화를 타임라인과 같이 나타낸 것이다.
소개하는 사례는 액체 가연물이 살포된 현장으로 매우 의심되는 현장이 촬영된 CCTV의 영상으로부터 몇 개의 프레임을 캡처한 것이다. 원거리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창문이 촬영된 영상으로 창문이 급격히 밝아지고 곧 어두워졌다가 서서히 밝아지며 화재가 성장하는 과정이 촬영되어 있다. 급격히 밝아지는 섬광의 과정은 단지 3개의 프레임에서만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위 첫 번째 사진 [그림6]은 섬광화재 직전의 모습이며, 다음 [그림7]은 내부의 섬광 화재로 인해서 창문으로 화염의 비치며 환해지는 모습이다. 다음 사진 [그림8]은 섬광 이후 즉시 섬광이 소멸된 모습이다. 이 3장의 사진은 불과 1초 내에 이루어지는 이벤트이며, 섬광이 창문으로 비치는 모습은 불과 3개의 프레임에서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빠르게 완료된다. 그 다음 사진 [그림9]는 서서히 성장하여 섬광 이후 3분 이후에 성장한 화염이 비치는 모습이다.
여기서 이야기 하고 있는 섬광화재는 화재초기의 점화상황을 말한다. 만일 섬광화재 이후 화재로 진행된 사건의 현장은 이후에 더욱 강렬해지는 화세로 인해서 물질 대부분이 내부까지 크게 변형되기 때문에 초기의 상황을 찾을 수 없다.(필자는 주로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화재패턴을 덮어쓰거나 지워버리게 된다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그러나 섬광화재 만으로 끝난 현장의 경우에는 섬광의 화염 또는 높은 온도에 의해서 물질 표면에 열변형을 남기게 된다. 섬광은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완료되기 때문에 물질의 깊은 곳까지 변형될 만큼의 충분한 열이 전달되기 어려우며 물질 표면에만 가벼운 열변형을 남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화성 액체 가연물을 이용한 방화현장으로 의심되고 용의자가 있다면 의류와 모발을 현미경으로 살피는 일은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모발과 섬유의 열변형 흔적은 육안으로 쉽게 관찰될 수도 있지만, 매우 가벼운 수준의 열변형은 현미경을 사용하여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는다면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강서 차고지 방화사건의 경우 용의자는 일체 묵비하며 범죄사실을 부인하였다. 화재현장과 용의자의 연결고리를 확인할 수 없어 수사에 난항을 겪던 중 시너를 사용했던 용의자의 의복과 손가락 모발에서는 미세한 열변형 흔적이 발견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화재와의 관련성을 추궁하여 범행 일체를 자백하게 되었다. 섬광화재에 의한 가벼운 열변형 흔적은 의복의 경우 일상적인 사용과 세탁, 모발의 경우 세면과 샤워 등 일상적인 활동을 한 경우에도 약 1달 이상 지속되는 것을 실험을 통해 확인하였다. 섬광화재의 흔적은 화재조사와 수사 실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감식요소임에 틀림없다.
액체가연물이 관여된 화재현장에서 섬광화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일반적인 가연물로서는 이러한 현상이 불가능하다는 점과 섬광화재가 조사관들에게 주는 힌트에 대해 설명하였다.
섬광화재로부터 화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점화 당시에 기체의 가연물이 관여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대표적인 기체 가연물로서는 일반적인 가스(LPG, LNG 등)와 저비점 석유류(시너, 휘발유 등) 물질의 유증이다. 섬광화재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통해서 저비점 석유류 가연물의 관여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가스 등 기타 기체가연물의 배제과정이 요구된다. 만일 이러한 배제가 가능하다면 섬광화재 사실의 독자적으로도 저비점 석유류 가연물이 관여되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비중이 높은 증거가 될 수 있다. 또한, 현장에서 발견되는 리퀴드 패턴(포어패턴, 스플래시패턴 등) 또는 전회에 설명하였던 수직재의 3차원적 패턴 등과 함께 고려된다면 간과할 수 없는 강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