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생각하면 복잡한 거리와 소음이 떠오르겠지만, 바르깔라는 다르다. 인도에 대한 선입견을 단번에 날려줄 정도로 고즈넉하고 평화롭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아래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는 다른 휴양지와 비교를 허락하지 않는다. 보면 볼수록 한없이 맑고 투명한 빛을 뿜어내는 아라비아해. 바르깔라에 가면 왜 그곳이 인도 허니문 일번지인지 단번에 알게 된다.
바르깔라(Varkala)는 남인도 께랄라주에 자리하고 있는 해안마을로, 인도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국 여행자들에게도 사랑받는 휴양지다. 유명 여행 잡지의 ‘인도에서 꼭 가봐야 할 곳 베스트 10’에도 절대 빠지지 않는 단골 손님이다.
고대하던 바르깔라를 만나기 위해 기차역에 내렸다. 역에서 다시 릭샤를 타고 10분 정도 오르막을 달리니 헬리콥터 착륙장이 나타났다. 이곳이 바르깔라 여행의 출발지. 비수처럼 꽂히는 햇살 때문에 얼굴에는 온통 주름이 자글자글 굽이쳤다. 릭샤 비를 셈하고 고개를 바다 쪽으로 돌리자마자, 눈과 입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이마의 주름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다가, 그것도 끝도 없는 바다가 발밑에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웬만한 바다에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는데, 생전 처음 바다를 본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뭔가 달랐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각도였다. 바다를 바라볼 때 해변에서 같은 눈높이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절벽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기 때문에 달랐던 것. 더 없이 광활해 보였다. 한동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바르깔라의 첫 번째 매력은 절벽 위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이라고 정했다.
바르깔라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된다. 절벽 위 풍경에 감동한 다음에는 해변으로 내려갈 차례다. 직접 모래를 만지고 물속에 퐁당 빠져보니, 또 다른 매력이 달려들었다. 부드러운 모래와 깨끗한 물이 주는 평화로움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파도소리는 어찌나 또 시원하던지. 해변의 한적함도 바르깔라 해변을 사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바르깔라에서의 일상은 단순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절벽을 타고 해변으로 내려간다. 아침 산책을 즐기는 이들과 눈인사로 ‘굿모닝’을 나누며, 바닷가를 한바탕 걷는다. 그리고 적당한 자리에 천 조각을 펼치고 앉아 사람들을 구경한다. 그러다 지겨워 지면 선글라스를 걸치고 책도 읽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분 좋은 아침 햇살에 몸이 슬슬 달아오른다. 땀이 송글송글 맺히면 바다 속에 들어간다. 파도타기를 하며 바다를 즐기다보면, 오전 시간이 후다닥 사라진다.
바르깔라에서는 가장 흥미로운 시간은 이른 아침이다. 해변이라 태양이 내리 쬐는 낮에 사람이 많을 것 같지만, 정작 해변에서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이른 아침이기 때문이다. 낮에는 자외선도 강하고 너무 뜨겁다.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은 이들은 요가 하는 사람들이었다. 요가는 인도를 대표하는 아이콘이기는 하지만, 이곳까지 요가하는 이들이 많을 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웬만한 호텔에는 자체적으로 요가클래스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요가를 접하기 쉬웠다. 요가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들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해 뜰 무렵 바다에 나가면, 바다의 에너지를 받으며 요가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온 몸을 펴고 자신의 몸을 만나는 시간. 명상이 따로 없었다.
다음으로는 크리켓을 하는 인도 사람들이었다. 크리켓은 인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넓은 해변에서 청년들이 모여 신나게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힛앤런(Hit and Run)’ 따악 소리와 함께 공이 날아가면 머리가 휘날리게 달리는 사람들. 그들 덕분에 싱그러운 에너지가 해변에 가득 채워졌다.
남쪽에는 힌두사원이 자리하고 있어, 바다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이들도 만날 수 있다. 바다에 공양물을 띄워 보내기도 하고, 물을 온 몸에 끼얹기도 한다. 해변 안쪽으로 들어가면 2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힌두 사원 자나다나 스와미 템플(Janardhana swami temple)이 있어, 인도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로 북적인다. 현지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그동안 지은 죄가 씻긴다고 여긴다. 그래서 바르깔라는 ‘죄를 없애준다(sin destroyer)’는 의미의 ‘파파나삼(Papanasam) 해변’으로 불리기도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바다에 온 몸을 던져 부지런히 서핑하는 사람들, 드넓은 해변을 개와 함께 달리는 이들, 밀려오는 파도에 사라질 것이 뻔한 데도 모래사장에 멋진 그림을 그리는 사람까지 다양한 이들이 바르깔라 해변을 함께 수놓는다. 이른 아침 배를 몰고 나가 싱싱한 해산물을 가지고 돌아온 어부들도 적지 않다. 덕분에 해변을 걷다가 작은 흥정이 오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스마트폰 세대인 젊은 청년부터 허리가 굽은 어르신까지, 델리에서 순례여행 온 인도 현지인부터 서핑 하러 온 미국 여행자까지, 하나의 카테고리로 엮을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해변을 함께 즐겼다.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아온 이들이 각자의 모습으로 한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도톰한 동화책을 보는 듯한 기분을 안겨줬다.
바르깔라 여행의 화룡점정은 해가 지는 모습이다. 사람들은 마치 시간 맞춰 극장에 가듯, 일몰 시간에 맞춰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어쩌면 그리 매일 다른 모양과 묘한 빛깔의 하늘을 보여 주던지. 첫날은 분홍빛으로 하늘이 물들더니, 다음날은 회색이 하늘에 깔렸다.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들면서 비가 쏟아지던 날도 있었다. 바르깔라에 머물던 일주일. 단 하루도 같은 일몰을 보지 못했다.
마지막 날 일몰을 보면서, 문득 우리 사는 것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매일 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매일 일몰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듯 우리의 하루하루도 다른 그림이 그려지고 있구나 싶었다. 오늘도 멋진 색으로 하늘이 물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