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승훈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화재폭발조사팀
방화범들은 목표한 대상의 완벽한 연소를 위해서 등유나 휘발유, 시너 등 석유류 액체 가연물을 촉진제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화재 조사관들은 현장에서 이러한 액체가연물이 관여된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 잔해에 남아 있는 화학성분을 확인하기 위해서 분석 시료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기관에 감정을 의뢰한다.
화학분석에 의한 감정결과에서 석유류 양성반응을 확인한다면 조사관은 현장에서 관찰되었던 여러 액체가연물이 관련되었던 화재패턴들을 열거하며 ‘방화가 의심된다.’ 또는 ‘액체 가연물이 관여된 것으로 추정된다.’ 등 이에 근거한 조사보고서를 작성할 것이다. 그러나 수집된 증거물에 대한 검사 결과가 음성반응이라면 이미 액체 가연물이 관여된 것으로 의심하였던 현장의 화재패턴들에 대하여 확신을 갖지 못한다. 심한 경우 액체가연물 사용을 인정할 수 없는 또는 부인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다. 이것은 자신의 결정에 대하여 추후 법정에서 설명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며 선행원인으로서는 경험과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분석기관의 감정결과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화재현장을 숲이라고 한다면 이곳에서 수집한 분석 시료는 나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장 조사관은 현장 전체를 검토하기 때문에 감정기관의 분석결과보다 큰 숲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석기관의 감정서에 의존하는 경향은 실무조사관들 사이에 만연한 소극적인 태도이며, 그 외의 화재패턴에 대한 불성실한 검토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관련 연구(최민기,2014)에 의하면 석유, 등유, 경유가 관여된 가연물의 질량이 90% 감소할 정도로 연소되는 경우의 GC/MS 분석 실험에서 대부분 각 석유류 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 그의 실험 조건 비하여 실제 화재현장의 상황은 더욱 장시간 연소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현장조사와 증거물 수집까지 현장에 방치되는 시간, 증거물 수집이후 분석까지의 시간이 실험에 비해 더욱 길어지므로 실제 상황은 이 실험에 비하여 더욱 가혹하다는 것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또 대표적인 석유화학제품이며 일반적으로 생활환경에서 많이 사용되는 PVC, PP, PET 시료만을 연소시켰을 때에도 감정인의 판단을 방해할 수 있는 방해물질인 Toluene, Ethylbenzen, Undecane, Dodecane 등이 검출되었다.
오히려 현장에 살포된 액체가연물이 노출되는 여러 혹독한 조건을 고려한다면 완전히 소모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며 오히려 이를 견디고 남아서 감정물로서 수집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또 위 최민기의 실험에서 언급하였던 바와 같이 액체가연물이 관여되지 않은 현장에서도 방해물질이 검출되었다는 점은 오판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것은 현장조사관이 분석결과에만 의존해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일 것이다.
화재현장의 특성상 조사관들이 현장에 들어설 때에는 이미 수많은 증거물들이 소실되고 겨우 남아 있는 몇 안되는 증거만이 수집된다. 실제로 액체가연물 사용이 매우 의심되는 현장에서 양성반응의 결과를 보지 못한 경우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액체가연물이 취향이 심하게 감지되는 시료를 수집한 경우에도 양성반응 결과를 보지 못한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시료의 화학분석에 의한 양성반응 결과를 참고하는 것이겠지만 화재현장의 특성상 이를 기대하는 쉽지 않다.
필자는 이에 대한 보완수단으로서 ‘연소패턴 분석을 통한 액체가연물 관여 여부 판단’이라는 주제를 조심스럽게 제언하고자 한다. 소수의 증거만이 수집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불가피한 노력으로 평가해 주길 기대해 본다.
직소퍼즐을 맞출 때 찾고자 하는 중요한 부분이 발견되지 않아도 이곳을 둘러싸는 여러 퍼즐들이 이미 맞추어져 있다면 그 사이에 맞을 수 있는 것은 수많은 퍼즐 조각들 중 그림과 모양이 일치하는 것은 단 한 개의 퍼즐일 수밖에 없다. 화재현장에서 찾고자하는 중요한 퍼즐의 실체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근접한 범위 내에서 비어 있는 퍼즐의 성질을 확인할 수 있고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액체가연물이 살포된 것으로 의심하는 화재패턴은 포어(Pour) 패턴, 스플래시(Splash) 패턴, 틈새연소 패턴, 고스트 마크(Ghost mark) 등 바닥재의 평면적 열변형 흔적을 거론하는 것에 그쳤으며 이에 대한 연구도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변함이 없다.
앞에 열거한 액체가연물의 평면적 연소흔적(특히 포어 패턴)은 다른 원인에 의해서도 유사한 형태가 만들어 질 수 있기 때문에 실무조사관들에게 큰 확신을 가지기 어렵게 만든다. 여기서 다른 원인으로 거론되는 것들은 1. 천정부 열기층 성장에 의한 복사열에 의한 영향(복사열에 의해 바닥재가 연소하는 경우), 2. 바닥재의 가연성(바닥재의 가연성이 높아 한곳에서 착화되어 바닥재를 타고 광범위하게 연소되는 경우), 3. 고체 가연물의 용융 연소(스티로폼 등 가연물이 화재 열기로 놓아 흐르면서 연소하는 경우) 등이며 그 중 실무에서 가장 혼란을 초래하는 것은 ‘1. 천정부 열기층의 복사열’에 의한 영향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본지를 통해 제언하고자하는 것은 복사열에 의한 영향을 배제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며 과거와 같이 단일 형태나 상태를 근거로 액체가연물의 관여여부를 섣부르게 판단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평면적인 연소흔적 외 바닥재에 살포된 액체가연물에서 화염이 존재할 때 인접한 수직재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열변형 흔적을 포함하여 3차원적인 분석을 실시함으로서 조사관은 더욱 높은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시너, 휘발유 등 저비점의 액체인화성 가연물은 살포 직후 증발을 시작하며 인화되기 전까지 공간 내에 혼합기를 형성한다. 형성된 혼합기의 양이 많다면 경우에 따라서 폭발이 발생할 수도 있으며, 적을 경우에는 섬광화재에 그칠 수 있다. 화재 이후 바닥에 광범위하게 살포된 액체가연물 위로 화염이 인화되며 이 화염은 바닥재 및 벽면, 가구 등 인접한 가연물의 수직면에 화염의 흔적을 남기게 된다.
액체 가연물이 관여된 경우에는 현장의 일반적인 고체 가연물로서 예상되는 연소하중 이상의 열 또는 화염을 제공한다. 이러한 열과 화염의 흔적은 바닥재와 인접한 수직재(ex. 바닥과 접한 벽, 책상 등 가구의 수직면)에 남을 수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바닥재가 타지 않은 경우에도 바닥에 화염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바닥재가 그을린 정도이며 탄화되지 않은 상태라면 바닥재가 직접 연소한 것이 아니라 매우 가까운 곳에서 화염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입증하며 이러한 화염을 유지할 수 있었던 별도의 가연물이 존재했다는 것을 입증한다. 게다가 이것이 균일한 수준으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면 고체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해당 화염을 제공했던 가연물이 액체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그림 1]과 [그림 2]는 바닥면의 열변형 흔적과 수직재 또는 바닥의 위쪽에 있는 가연물에도 열변형 흔적을 보이고 있다. 각 현장에서 채취된 감정시료에서 석유류 양성반응의 화학적 분석결과가 없다고 하더라도 조사관들은 현장에서 이러한 흔적을 발견하였을 때 액체가연물이 관여되었다는 가설에 큰 확신을 가질 수 있으며 연소흔적의 분석을 통해서 액체가연물의 존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해석논리는 다음과 같다.
[그림 1]의 수직재의 연소흔적, [그림 2]의 바퀴에서 보이는 열변형 흔적은 바닥으로부터 화염 또는 열에 의한 흔적이다. 그러나 바닥재는 약간의 열변형 흔적이 관찰될 뿐 바닥재 자체가 화염을 일으킬 만큼 연소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수직재와 바퀴에 전달된 열은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인가?
연소 후 가연물의 잔해가 관찰되지 않는 다는 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액체가연물의 특징이기도 하다. 사진에서 보는 바닥재가 사진이 촬영된 부분뿐만 아니라 유사한 정도로 광범위하게 열변형되어 있다면 이러한 연소형태는 기체나 고체가연물에 의한 것이라는 가설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액체가연물이 관여된 것이라는 것을 강한 확신으로 주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만일 위에서 설명한 증거들이 현장에서 수집되고, 더불어 포어패턴 등 기존의 리퀴드 패턴이 관찰된다면 액체가연물의 존재여부에 대하여 고려하지 않고서는 전체적인 현상을 재구성이 불가능할 것이다.
즉 양성반응 분석결과가 없는 경우에도 이러한 흔적들이 발견된다면 액체가연물이 현장에 관여되었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천정부 열기층은 구회실의 상층부에 수평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곳으로부터 방사되는 복사열전달이 가장 쉬운 구조는 복사선과 정각을 이루는 바닥면 또는 테이블의 상판과 같은 수평 부분이다. 만일 현장에서 동일한 또는 유사한 재질, 유사한 높이의 수평면과 수직면의 소훼상태를 비교하였을 때 수평면에 비하여 수직면의 열변형정도가 심하게 관찰된다고 하면 이는 천정부 열기층 외 별도의 열원이 작용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수직재의 열변형은 인접한 화염에 의해서도 발생하지만 천정부 열기층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천정부 열기층은 위에서 아래로 축적되어 내려온다. 상당한 두께의 층을 이루고 있는 상태에서 층 내부의 온도는 대류현상에 의해서 위쪽의 온도가 가장 높으며, 층의 아래쪽으로 갈수록 온도는 낮아진다.
이 층으로부터 아래쪽으로 조사되는 복사열 전달율도 층과 가까울수록 높으며, 아래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므로 구획실 전체에 천정부 열기층에 의한 열전달은 높은 곳으로부터 낮은 곳을 향해 점차 낮아지고 이로 인한 열변형 흔적 또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갈수록 약하게 관찰될 수밖에 없다. 만일 현장에서 이와 같이 높은 곳으로부터 낮은 곳으로 점차 약해지는 연소의 강도가 일치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천정부 열기층 외 해당부위에 별도의 열원 또는 화염을 제공하였던 가연물이 존재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논리는 비교하려는 수직재의 연소성이 균일한 경우에 적용할 수 있으며, 상부와 하부가 단일물질이거나 연소성이 균일함에도 불구하고 위쪽 보다 낮은 곳이 더욱 심하게 연소되었다면 이것은 천정부 열기층에 의한 연소라고 볼 수 없으며, 해당 부위에 연소성이 높은 가연물이 관여되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러한 수직재와 접한 바닥에 광범위한 열변형 흔적이 관찰된다면 이는 액체가연물 관여에 대한 확신을 더욱 견고하게 할 수 있다.
현장 조사관은 액체 가연물이 관연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건을 재구성하기 위해서 시료의 화학적 분석 결과에 의존하려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현장의 연소흔적 등 화재패턴은 분석결과 부재시의 차선책이 아닌 더욱 비중 높은 우선적 증거로 취급되어야 하며 분석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최민기, 2014, 인화성물질을 촉진제로 사용한 방화화재의 감식기법에 관한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