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현대를 보려거든 상하이(上海)를 가고, 근대 오백년 역사를 보기 위해서는 베이징(北京)으로, 오천년 역사를 보려면 산시(山西)로 가라는 말이 있다.
중국 대륙의 동북쪽 산시성(山西省)에 있는 미앤산(绵山)은 중국의 그랜드캐넌으로 불릴 만큼 아름답고 험준한 관광명소이지만, 춘추시대 진(晋)나라의 충신 개자추(介子推)가 그의 노모를 안고 불에 타 숨진 슬픈 사연이 있는 곳이다.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 문공은 왕위에 오르기 전, 아홉 명 형제간의 왕위 계승 다툼에 밀려 추방된 후 19년의 긴 세월 동안 주변국을 떠도는 망명 생활을 했다. 궁핍한 생활로 인해 문공이 병이 들어 쇠약해졌을 때, 그의 가신 개자추가 끓여온 고깃국을 배불리 먹고 원기를 회복하였다. 나중에 그것이 개자추의 허벅지 살이었다는 것을 알고 문공은 후일 반드시 보답하리라 결심하였다.
이후 진나라로 돌아가 왕이 된 문공은 자신을 보필한 신하들에게 상을 내리는 과정에서 그만 개자추를 잊고 말았다.
관리에 등용되기 위해 서로 공을 가로채고 다투는 것에 환멸을 느낀 개자추는 어머니를 모시고 미앤산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다. 훗날, 자신의 과오를 깨달은 문공이 사람을 보내 개자추를 찾아오도록 했으나 그는 산에서나오지 않았다.
문공은 산에 불이 나면 효자인 개자추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산에서 나올 것으로 생각하고 불을 질렀다. 그러나 개자추는 끝내 나오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버드나무 아 래에서 불에 타 죽고 말았다.
이후 사람들은 개자추가 죽은 날이 되면 불 사용을 금하고 차가운 음식을 먹으며 그의 혼령을 위로하였는데, 한식(寒食)날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미엔산으로 떠나기 전 어머니가 "너는 망명생활 중 굶주린 문공에게 허벅지 살을 베어 바칠 만큼 큰일을 하였는데 왜 그 공을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개자추는 "문공의 즉위 는 하늘이 정한 일로서, 이를 자신의 공인 것처럼 다투는 것은 도둑질보다도 더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저는 한평생 짚신을 삼을지언정 하늘의 뜻을 개인의 공으로 끌어 들여 탐내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개자추의 마음을 이해한 어머니는 "네 말이 옳다. 아들이 청렴결백한 사람일진대 어미가 어찌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겠느냐. 그래, 우리 모자 심산으로 들어가 은거하자..."
자신의 뜻이나 생각과 다름에서 벌어지는 여러 비판적 상황이 벌어졌을 때,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어 타인의 공감과 동정을 유발하는 심리를 〈개자추 콤플렉스〉라고 말한다. 개자추가 은둔에 이르는 과정을 요즈음 처세 기준으로 보면 어떻게 해석될까?
미국의 심리학자 듀크 로빈슨은 그의 저서 〈좋은 사람 콤플렉스〉에서 이렇게 말한다.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라. 착한 이미지를 부각 시켜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라.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당당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