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땅에서 피어난 사랑의 알콜, 데낄라
멕시코 할리스코주_데낄라 마을
글 | 사진 채지형 작가
데낄라에 대해 설명해주는 호세 쿠에르보 직원
아가베를 자르는 연장
태양의 나라 멕시코. 선인장과 프리다 칼로, 마리아치와 루차 리브레, 사파티스타와 죽음의 날, 데끼라와 코로나, 정열의 나라 멕시코에는 무지개 빛깔보다 더 많은 아이콘들이 있다. 그러나 이 많은 아이콘 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데낄라다. 손등에 소금을 올리고 혀로 살짝 소금 맛을 본 후, 잔을 탁자에 탁탁 두드리고 식도를 열어 단숨에 들이키는 데낄라. 데낄라가 뜨거운 사랑의 맛이라면 그 사랑이 주는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레몬의 몫이다. 그래서 데낄라가 주는 짜릿함을 맛본 후에는 준비한 레몬을 얼른 입에 물어야한다. 누구나 하나쯤 사연을 품고 있을 술, 데낄라. 그 데낄라가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곳이 멕시코 제 2도시 과달라하라(Guadalajara)에서 한 시간쯤 떨어져 있는 데낄라 마을이다.
할리스코주에 속하는 데낄라 마을에 도착하면, 누군가 그곳이 데낄라 마을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온 몸으로 알 수 있다. 사방 천지에 데낄라의 원료인 용설란, 아가베 밭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용의 혀를 닮았다고 해서 ‘용설란’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아가베는 백년에 한번 씩 꽃이 필 정도로 꽃이 귀하다. 데낄라 마을로의 여행은 아가베를 다듬는 과정을 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데낄라의 명가 호세 쿠에르보의 직원인 후안 씨는 멋진 카우보이 모자에 청바지를 입고 나와 능숙한 칼솜씨로 아가베 뿌리를 착착 잘라서 파인애플 모양으로 먼저 만들었다. 힘과 기술을 모두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후안씨는 이런 작업을 ‘히마도르’라고 한다며, 동그랗게 다듬어진 뿌리가 아가베 나무 중에서도 데낄라의 진짜 원료라고 말했다.
아가베를 파인애플모양으로 만드는 작업
다음은 파인애플 모양으로 다듬어진 뿌리들을 가지고 데낄라 만드는 과정을 살펴볼 차례. 아가베 밭에서 5분도 안 돼 도착한 호세 쿠에르보 공장 앞에는 아가베 밭에서 막 실어온 동그란 아가베 뿌리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데낄라를 만드는 두 번째 단계는 다듬어진 뿌리들을 가마에 넣어 푹푹 찌는 것. 가마 앞에는 찐 아가베 맛을 볼 수 있도록 방금 가마에서 꺼낸 아가베가 놓여 있었다. 살짝 입에 대보니 얼마나 단지, 오랫동안 잊고 있던 밤고구마의 쫀득한 단맛이 떠올랐다.
이렇게 달짝지근한 아가베를 ‘풀케’라는 이름의 커다란 통에 담아 발효시킨 후, 증류기를 통해 몇 번 증류를 하고나면 바로 투명한 데낄라 원액이 만들어진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데낄라 맛을 볼까? 호세 쿠에르보에서 데낄라를 처음으로 맛본 곳은 풀케 앞. 막 증류된 데낄라를 한번 마셔보라는 말에 한 모금 입에 넣었더니 소독용 알콜을 마신 것처럼 독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투명하게 만들어진 데낄라는 와인처럼 참나무통에 넣어서 숙성시킨다. 데낄라의 이름은 보통 숙성 기간에 따라 붙여지는데, 3개월 미만 숙성한 것은 호벤, 3~12개월 숙성시키면 레포사도, 1년 이상 숙성시키면 아네호라고 부른다. 또 2~3년 숙성한 데낄라는 레알레스라고 하는데 데낄라의 독함보다는 진한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어 ‘골드 데낄라’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데낄라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호세 쿠에르보의 가이드 카르멘은 데낄라 역시 여러 성분들이 조화를 이룰 때 부드러워지며,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림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데낄라지만, 역시 귀한 것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낄라 공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니 고대하던 데낄라 시음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를 잡으니 스트레이트 잔이 아니고 브랜디 글라스가 나온다. 향을 음미하기 위한 잔이다.‘아니, 데낄라에 무슨 향?’하며 의아해하자 카르멘이 ‘데낄라에도 와인처럼 다양한 향이 있다’며 향을 음미하는 것이 데낄라를 만나는 첫번째 단계라고 설명했다.
카르멘을 따라 해보지만 데낄라 향은 그다지 감동스럽진 않았다. 대신 진한 데낄라가 목을
타고 들어가니 얼굴이 금세 타올랐다. 이어서 데낄라를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려놓은 인기 칵테일 마가리타가 등장했다. 둥근 잔 둘레에 소금을 친 마가리타는 그 어느 고세서 마셨던 것보다도 달콤하게 목을 타고 넘어갔다.
내내 과묵하게 카르멘의 설명만 듣던 사람들도 한 잔씩 들어가자 서로 농담을 건네며 호탕하기 웃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화사해지더니 데낄라가 몇 잔 돌고 나자 어느덧 모두 친구가 되어 버렸다. 역시 멕시코의 아이콘 ‘데낄라의힘’은 기대했던 것보다 대단했다.
데낄라를 들고있는 여인
초록빛 선인장 바다
쌓여있는 아가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