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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연.기술 복합재난의 현황 및 개선방안

글 | 오윤경 한국행정연구원 박사

1. 머리말


최근 발생하는 재난은 대형화, 복합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모든 재난이 복합재난’이라 할 정도 로 대다수의 재난은 단일재난으로 그치지 않고 연쇄적인 2차, 3차 재난으로 발전되고 있으며, 복합재난의‘상호의존성’, ‘연쇄성’, ‘동시성’ 등의 특징은 전통적으로 위해요인(발생원) 중심의 재 난 구분체계를 넘어서는 재난관리체계를 필요로 하고 있다.

재난을 정의할 때 ①외부요인(위해: Hazard) 중심 정의, ② 피해 중심 정의, ③ 사회적 취약성 중심 정의, ④ 기타(심리적 상태, 불확실성 등) 등의 방법이 활용되고 있으며, 이 중 가장 일반적 인 것이 위해(발생원) 중심의 정의라 할 수 있다(김병섭 외, 2011:16-31). 이러한 방식의 재난 정 의는 재난의 원인을 나열하고 각각의 재난 특성에 따라 대응하는 업무 분장을 명확하게 할 수 있 다는 점에서 현대 관료제적 정부 구조에 가장 적합한 재난 정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성문 법 체제의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이러한 정의가 명시됨으로써 인력 및 예산을 배분하고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기반이 되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서도 이와 같이 위해요인에 따라 ‘자연현상’을 기준으로 자연재난 을 정의하고 있으며, 사회재난의 정의에서는 위해(발생원)에 따라 화재, 붕괴, 폭발, 교통사고, 화생방사고, 환경오염사고 등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재난의 복합화가 나타남에 따라 이러한 위해요인이 동시적, 연쇄적으로 발생한다는 데 에 문제가 있다. 재난관리의 책임관계가 모호해지고 불확실성이 가중되기 때문에, 위해요인에 의해 구분된 업무체계가 작동하기 어렵다. 또한 위해요인의 복합 형태는 경우의 수를 모두 헤아 려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위해요인에 따른 정의 및 업무 분 장으로는 관리가 불가능하다. 특히 자연재해와 기술재난(산업사고)는 전통적으로 주무부처 및 기관이 분리되어 관리체계를 구축해왔기 때문에, 동시다발적으로 복합재난이 발생한 경우에 대 처하기 더욱 어렵다.

2. Natech1)위험 연구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자연·기술 복합재난에 대한 연구 및 정책이 미흡했던데 비해, 유 럽 등을 중심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Natech위험(Natural hazards triggered technological disaster)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Natech위험은 자연재해로 인해 발생하는 기술재 난 또는 산업사고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Natech위험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OECD 등의 화학물질 관리 분야에서 지진, 해일, 폭우 등의 자연재해로 인해 위 해물질(Hazmat: Hazardous Material)의 유출에 대해 주로 연구되어왔다. 그러나 보다 포괄적 인 관점에서 Natech위험은 자연재해로 인해 발생한 기술재난(산업사고)이 다시 환경오염 등 자 연재난 피해를 유발하는 경우까지 포함한다고 할 수 있으며, 오윤경(2013)에서는 이러한 광의의 Natech위험을 ‘자연·기술복합재난’으로 정의하고 Natech위험관리에서 중요한 특징은 자연재 해-기술재난(산업사고) 간 상호의존성과 연쇄효과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1) 이 글은 Natech재난관리방안연구(오윤경, 2013)의 내용을 발췌하여 재정리하였음을 밝힙니다.


| 그림 1 | Natech위험 정의

우리나라의 경우,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자력안전체계를 재정비하며 일부 원자력 안전 정책에 있어 지진, 해일 등 자연재난 발생과 관련한 대비·대응책이 마련되었으나, Natech위험의 주요 분야라 할 수 있는 화학물질관리에 있어서는 자연재해에 대한 고려가 이루 어지지 못하고 있다. 「화학물질관리법」은 화학물질 관리에 있어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개정이 이 루어진 바 있으나, 자연재해에 대한 사항은 포함하고 있지 않다. (오윤경, 2013)

유럽위원회(EC0는 2003-2004년 유럽 각국의 Natech재난 사례 및 제도적 대비책에 대한 워 크숍을 개최하였다. 이 워크숍을 통해 주요국의 Natech위험에 대한 관심, 법적 체계, 주요 사 례 등에 대한 논의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바 있다. 또한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2012년 OECD는 Natech위험관리에 관한 워크숍을 개최하여 다음의 주제들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바있다.

< 표 1 > OECD Natech위험 워크숍의 주요 쟁점
주제 주요 쟁점
자연재해: 재해지도와
경보 시스템
•자연재해에 대한 데이터 수집, 분석 및 정보 확산에 대한 국가적 의무
•자연재해 지도를 활용한 효과적인 소통 방법은?
•재해지도 작성에 대한 국제적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인접국가 간 정보 수준의 통일 등)
•조기경보시스템의 장단점?
Natech 위험관리 •관계 부처, 기관 등의 Natech위험 및 역할에 대한 인지 수준 제고
•Natech위험 대응 훈련
•공장 등 설비관리에서 Natech위험 고려
•국내외 모범 관리사례(Best Priactice)의 발굴
기후 변화와 Natech 위험관리 •기후변화에 따른 재난 양상의 변화(강도, 빈도 등)을 고려한 Natech위험 관리체계
Natech에 있어 PPP(Polluter-Pays-Principle)의 적용 •Natech재난의 책임 소재?
※PPP원칙은 관리책임자에게 재난의 책임이 있지만 Unforeseeable, Irresistible, Inevitable한 상황에 대해 예외 적용
국제 협력 •Natech위험관리를 위한 국제 협력 강화 방안은?
•국제기구 또는 민간단체의 역할은?

3. 국내 자연·기술 복합재난 관리 현안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연·기술 복합재난관리를 위해서는 기존의 위해요인별 접근에 따른 재난관리체계를 보완할 수 있는 포괄적(all-hazrad)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책 및 연구의 측면에서 국내 현안과 개선방안에 대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 조직적 차원
재난관리 조직적 측면에서 부처별로 구분된 재난관리체계에서 복합재난에 대한 대응체계가 미 흡하다는 점이다. 복합재난관리를 위해서는 각 주무부처, 기관에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확보 되어야 하고 이들 간 상호연계 및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많은 부 처, 기관에서 전문적으로 재난관리업무를 담당하는 인력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에, 복합재난 관 리를 위한 조직적 체계가 갖추어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현재 업무 구조에서 복합재난관리 업무는 기존의 재난관리업무 이외에 부가적으로 가중되는 업무로 인식되기 때문에, 복합재난관 리를 위한 별도의 인력과 예산에 대한 요구가 존재한다.

또한 원할한 소통과 협력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컨트롤타워 기능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자연 재해나 기술재난의 각 분야는 고도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재난관리가 이루어져야 하는 분야이므 로, 각 전문분야별 조직이 독립적으로 전문성을 구축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복합재난이 발 생하게 되면 이러한 전문적인 정보들이 한 곳으로 집중되어 종합적으로 분석되고 재해석되어 행 동으로 옮겨져야 한다. Comfort(2005, 2007)에서 제시하고 있는 ‘보타이모델’은 재난관리에서 개별 정보가 종합되고 통합적 분석 결과에 따라 행동 방향이 도출되는 과정을 나타내고 있다. Comfort(2007)은 재난상황에서 이러한 정보의 흐름이 신속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평상시에도 지속적인 상호연계와 소통의 과정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 그림 2 | 보타이 모델(The Bowtie model)

출처 : Comfort(2005:347. 2007;196) 수정; 오윤경(2013)에서 발췌

화학재난 대응을 위한 합동방재센터나 화학물질안전원의 경우, 현장 대응 기능을 강화한 조직 체계를 갖춤으로써 부처 간 협업이 가능하도록 신규조직을 설치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들 조 직들의 운영 과정상에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실효성 있는 운영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특히, 협업 조직이 즉각적으로 통합된 의사결정 체계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적절한 교육과 훈 련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나. 법제도적 차원
현대 재난의 대부분이 복합적인 성격을 띄고 전개되기 때문에, ‘복합재난’에 대한 별도의 법제 도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다. 복합재난을 법상에서 일괄적으로 규정하거나 각각의 경우의 수를 헤아려 매뉴얼을 작성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안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효과적인 자연·기술 복합재난관리를 위해서는 주요 산업, 시설관리 법제상에서 자연재해 를 고려하는 등의 법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원자력안전법에서 지진, 해 일 등에 대비하는 규정을 포함하는 것과 같이, 과학기술 진흥 및 개발, 산업입지, 기반시설 관리 등에 관한 법률에서 주요 자연재해의 영향을 고려하도록 법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Di Mauro, C. 외 (2006)의 연구에서는 위해요소 중심으로 관리하는 단일위험적 접근(singlerisk approach)과 달리, 복합위험적 접근(multi-risk approach)에서는 복수의 위해요소들이 같은 지역적 범위 내에서 연쇄적 또는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지역 기반의 취약 성을 중심으로 재난관리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에 근거하여, 산업시설, 기반시설 등의 입지 선정에 있어 자연재해 발생 위험에 대한 심층적인 고려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법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다. 연구 및 기술적 차원
자연·기술 복합재난의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보다 심층적인 복합재난에 대한 연구와 정보의 공유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자연재해 분야와 기술재난 분야 간 다학제적, 융 합적 연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정책연구체계 및 기술개발을 주관하는 부처 등의 분절로 인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국책 연구기관들의 연구보고서를 살 펴보면, 복합재난 관련 연구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문제의식과 현황분석 등이 중복되는 경우가 존재한다. 각 기관, 부처 간 분절로 인해 연구의 심화 또는 기술의 고도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며, 상대 분야의 내용을 심층적으로 연구하여 복합재난 연구결과로 제시하기 어렵다.

재난발생정보의 경우, 자연재해에 대한 정보와 기록은 재해연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고, 산업재해, 화학사고 등은 각 주무부처의 기록관리 시스템, 연감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각 재난 사례에서 원인, 피해 등에서 나타나는 복합재난적 요소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복 합재난 사례를 연구할 수 있는 통합적인 재난정보를 획득하기 어렵다. 또한 기술 개발에 있어서 도 부처 간 연계의 부족으로, 유사한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가 중복적으로 나타나면서도 상대 분 야에 대한 고려는 충분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계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컨소시엄을 구축하여 연구개발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의 개선을 통해 상호 간 적시성 있는 지식 및 정보 공유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연구 및 기술개발의 결과를 정책 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부처 및 정책 간 연계가 필요하다. 자연재해관 리를 위한 방재계획과 입지 등에 대해 명시한 도시계획 간 연계 등, 정책적으로 연계될 때 복합 재난관리가 실효성 있게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4. 맺음말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복합재난에 대한 연구와 정책적인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직 초기 단계라 할 수 있는 국내 복합재난관리 체계의 확립을 위해서는 여러 관련 분야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특히 자연·기술 복합재난의 효과적 관리는 자연재해와 사회 재난 분야 간 연계를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조직적, 법제도적, 연구 및 기술적 차원의 협력과 연계 방안에 대해 논하였다.

이러한 자연·기술 복합재난관리 체계를 구축함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관리 대상 과 범위를 명확히 구분 짓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존의 재난관리 연구 및 정책은 관리 대상과 범 위를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연계·협력 체계 역시도 기존의 프레임워크 상에서 논 의될 수밖에 없는데, 복합재난은 대상과 범위의 뚜렷한 구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 한 연계·협력이 원활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복합재난 특성과 불확실성을 이해하 기 위한 풍부한 자료의 구축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 자연·기술 복합재난의 연쇄성과 전개과 정 등에 대한 면밀한 사례 연구에 근거하여 연구와 정책이 추진될 필요가 있으며, 또한 국내 재 난환경에서 발생가능한 자연·기술 복합재난과 그러한 상황에서의 대응체계에 대한 시나리오의 개발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