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도시지역으로부터 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지역으로 교통이 불편하고 주민의 소득수준과 생활수준이 현저히 낮은 지역 중 령으로 정하는 요건에 해당하는 지역을 말한다. 오지가 사진가들에게는 무척 매력적이다. 제국주의 시절에는 식민지 개척의 임무를 띤 탐사대 일원인 사진가가 찍은 미개지역으로, 20세기 초 만국박람회장에서는 호기심과 미지의 경이로, 요즘은 누구나 꿈꾸는 여행지로 오지 사진은 변모해 왔다.
사진가에게 매력적인 오지
이렇게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사진사에 꾸준히 등장하는 오지 사진은 왜 생산되는가? 먼저 사진가인 관찰자의 호기심 때문이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을 촬영해 내보이는 명예와 그에 따르는 수익성이다. 수익성은 돈 뿐 아니라 스파이 노릇을한 대가도 포함된다. 세계적으로 영국왕립지리학회나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이 그런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전 지구적인 위성사진과 구글(Google)의 탄생 등으로 지리와 단순 풍물은 사진가에게도 관객들에게도 호기심을 만족시켜줄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오지를 단지 내보이는 정도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관객이나 독자를 끌어들이는 오지 여행사진으로 탈바꿈한다.
오지를 다루는 인문지리학사진은 기록을 우선한다. 미학적인 측면의 평가는 부산물이다. 모두 관객을 대상화하고 교육적 측면과 정보성을 중시한다. 하지만 오지 여행사진은 감수성을 중시한다. 관객과 사이를 좁히려하고 막연하게 감상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가라고 부추긴다. 따라서 이 사진들은 필연적으로 자본과 연동한다. 여행상품을 만들고 여행과 관련된 제품들의 판매를 촉진한다. 이곳에서 오지는 대상화되고 타자와 되어 무작위로 사진이 생산된다. 자신의 추억을 넘어 과시가 되고 종래에는 권력이 된다.
오늘날 이런 상업적인 현상은 종전의 오지 기록자의 역량을 뛰어 넘는다. 상품을 협찬 받고 여행상품을 만들어 오지로 달려간다. 오지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불쌍하고 도움을 쥐야 하는 타자로 변모한다. 즉 휴머니즘은 옵션이다. 즉 오지 사진은 우리에게 내면화된 타자의 다른 모습이다. 기존에 국내 사진 계에서 오지와 그곳 사람의 삶을 파고들어 연구하는 사진가는 필자를 포함해 몇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인터넷을 통해 활동하는 아마추어사진가들 중에 오지전문가는 너무 많다. 사진의 테크닉도 훌륭하다. 수많은 팬들을 몰고 다닌다. 그런데 그들이 목표하는 사진이 불분명하다. 과도한 휴머니즘과 대상의 아름다움으로 넘쳐난다. 그것은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으며 오지 인들의 관념과도 상충한다.
지금의 오지사진은 만들어진 공상의 이미지에 가깝다. 전 지구적으로 오지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곳이나 포장된 도로가 뚫리고 핸드폰이 터진다. 그곳 주민들 역시 중세의 삶이 아닌 위성 TV를 보며 지낸다. 우리가 그곳에 서 주목할 것은 도시민의 사고에서 반영된 오지인의 삶이 아니라 사진가와 같은 도시민들로부터 소외받는 사람에 대한 보고서가 되어야 될 것이다.
오지에 넘치는 휴머니즘
오지를 간다는 것은 여행인가? 기행인가? 사진가들에게는 민감하다. 여행이라 함은‘여유로운 행’이니 놀러갔다 왔다는 뉘앙스가 있어 굳이‘기록하는 행’이라 한다. 하지만 여행인지, 기행인지? 아니면 고행인지 난행인지가 헷갈리는 필자로는 그다지 구별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등산화를 신고 다니며 그 멋진 인도 남부 해안에서 발 한번 담가본 일이 없으니 그를 슬퍼할 뿐이다.
요즘 사진가들은 자신의 발표 매체로 책을 선호한다. 발표할만한 대중 매체가 줄어 든 요즘, 돈 드는 전시는 부담이지만 견실하게 기록한 글과 사진으로 책을 낸다면 인세라는 수입이 발생하니 그보다 좋은 일이 없다. 하지만 서점에서 사진가들이 만든 책을 유심히 보면 상황은 그리 만만치 않다. 자비인지 반자비인지 알 수 없는 두툼한 사진 책은 먼지를 쓰고 있고, 꽤나 고민한 흔적이 담긴 에세이는 초판에 여전히 머물고 있다. 독자들의 입에 열심히 회자되는 책들은 대부분 사진 매뉴얼이거나 가벼운 포토 에세이 들이다. 정작 국내에서 꽤 노력했다는 이들의 책은 한켠에 밀려나 있다.
사진가들이 출판 시장에서 이렇게 맥을 못 추는 이유는 뭘까? 답은 글에 있다. 국내 사진가 중에 장문의 글이 가능한 이는 손에 꼽는다. 원로부터 따진다면 미문과 간결함의 강운구가 있고 중년에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찾는 노익상이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몇이 있지만 이들은 사진 계에서는 소수일 뿐이다. 여전히 많은 사진들은 말과 글이 아닌 사진으로 보여주면 된다는 소신을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그러니 판매가 거의 미진한 사진집보다 일반 단행본을 선호하는 출판 편집인들을 꼬시기란 힘든 일이다.
하지만 글쓰기가 그리 대단한 일만은 아니다. 사진가가 탁월한 미문의 문학가를 따라잡기란 애초에 불가능이다. 그렇다고 글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사진가는 사진가답게 글을 쓰면 된다. 현장에서 보고, 느낀 그대로의 날 것 같은 글이 사실은 독자들에게 제 맛이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꼼꼼하게 글이나 음성으로 기록만 해놓는다면 그보다 좋은 글감은 없는 것이다. 하긴 요즘처럼 카메라마다 장착된 비디오를 활용하면 더욱 수월할 수 있다. 게다가 예전처럼 완벽한 한권의 책을 위해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사진가를 도와줄 친절한 편집자가 대기하고 있다.
요즘은 여행 전문 작가, 전문 사진가라는 직업까지 있지만 예전에야 이런 명칭이 있었을 리 없다. 모두 여행을 다니고 기록을 남겼다. 상인도, 학자도, 종교가도 길 위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지 않고는 못 배기기 때문이다. 사진가는 그런 측면에서 근대에 탄생한 최고의 기록가들이다. 그들은 놀지 않고 여유부리지 않으며 성실하게 기록한다. 천성이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가의 여행은 기행이다. 오지에 간다면 기행 할것이고, 기행을 했다면 꼭 기록을 남겨야 한다.